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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면 창암리 도롱골·창말·남전 편
우리마을 이야기(10)
2006년 11월 20일 (월) 00:00:00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보령, 서천의 교통중심지였던 곳

창암리는 도롱골과 제배마을이 1리이고 관넘어와 창말이 2리 남전을 3리로 되어 있다. 1리 도롱골과 제배마을은 간치역을 안고 있는 마을이다. 간치역은 1936년 황률리에 설치되었었는데 1982년 지금의 간치역으로 약 300m 옮겨왔다. 옛날 증기기관차가 운행될 때에는 이곳 간치역에 물탱크를 설치하고 모든 열차에게 물을 공급해주던 곳이었다. 자동차가 드물고 다른 교통수단도 신통치 않았던 일제시대만 해도 이곳은 보령의 남부지역과 서천의 서북부지역의 교통중심지 역할을 했었다. 당시로선 간치역을 중심으로 주변이 꽤 번화했었고 사방으로 도로가 연결되어 물류유통이 활발했던 곳이다. 주산에 역이 생기고 자동차 교통이 발달하면서 지금은 하루에 겨우 몇 사람만 이용하는 곳으로 쇠퇴하고 말았다.

창암1리는 모두 쉰 두 집인데 제배가 마흔 두 집에 백여 명의 주민이 사는 비교적 큰 마을인데 마을 서쪽에 커다란 제비 형상의 바위가 있다고 마을 이름을 제배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 바위를 찾아보려고 주막거리 쪽으로 가보니 제비바위로 여겨지는 것이 보였다. 바위 앞에 누구의 무덤인지 지역에 큰 공적이라도 남긴 사람들인 듯 잘 정돈된 두 기의 묘가 있다. 그곳에 있는 바위가 제비바위인지 사람들에게 알아보려고 마을 가운데에 있는 작은 매점으로 들어갔다. 손님도 없이 늙수그레한 여인 혼자 텔레비전의 연속극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아주머니 여기 제비바위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물러유. 조기 노인네헌티 여쭈슈.”

텔레비전에 눈을 붙인 채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여든 살 안팎으로 보이는 노인이 지나가고 있다. 얼른 매점을 나와 노인을 잡고 물었으나 대답은 역시 ‘물르겄슈’였다. 다른 주민을 찾아 물었으나 이 마을 역시 현 농촌마을의 실정대로 주민 대부분이 노인들이고 지형에 대한 이름 따위에 관심조차 없었는지 확실히 대답해주는 이가 없다.

말 무덤이 있던 마살메모탱이

다시 주막거리 쪽으로 나가 모퉁이를 도니 도롱골로 들어가는 길이 나왔다. 기차철로 밑으로 통로가 나 있는 도롱골은 안도롱과 밧도롱으로 나뉘어 있다. 예전에 숯을 구웠다는 숯굴재를 끼고 안도롱으로 들어가니 인기척보다 개들이 먼저 어디서 온 작자냐고 묻는다. 일곱 집이 가족처럼 사는 마을은 아담하고 아늑한 분위기인데 고인돌로 보이는 바위가 몇 개 보인다. 맨 꼭대기 집에 인기척이 있어 올라가 보니 분재를 내놓고 손질하는 주민 이세창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여긴 안도롱이구 저짝 아래 밧도롱으루 가먼 우리 어릴 적이 놀던 고인돌두 있구유, 밭도롱굴 아래 마살메모탱이루 가먼 상투바위두 있구, 그 밭이 옛날인 크드만 무데기였는디 죽은 말들을 묻었다구 말무덤이라구 헷던 디유. 그거나 알어 보시먼 뭐가 될라나 여긴 뭐 얘깃거리두 웁구 내세울것두 별루 웁는디유.”

이세창 씨의 말을 뒷받침 하듯 마살메모탱이란 이름도 말이 죽은 곳이란 뜻을 담고 있는 것 같다. 마살메모탱이엔 고인돌로 보이는 커다란 바위만 하나 확인될 뿐 별다른 것을 찾지 못해 사람을 만나보려고 했으나 밧도롱굴 전체인 세 집이 모두 비어 있어 그도 실패 했다. 하릴없이 도롱골을 나와 창암2리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재배와 도롱골에 바위가 있지만 창암리는 바위 마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바위가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각시바위인가 사내바위인가

   
▲ 창말 앞에 있는 각시바위
21국도에서 꺾어져 비선거리에서 삼곡리로 넘어가는 지방도를 따라 왼 편으로 관너머, 창말, 남전 순으로 마을 입구가 있다. 창암 2리는 총 쉰일곱 집인데 비선거리에 여섯 집이 있고 관너머는 열아홉 집이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가을걷이의 막바지라서인지 모두 바쁜 주민들은 대부분 마을에서 눈에 띄지 않는다. 마을 가운데 공터에서 허리 굽은 남자 노인을 포함한 깨를 터는 세 노인이 보였다. 이곳 역시 노령화된 농촌의 실정을 모면할 수는 없는 모습이다.

“우리처럼 일만 허메 산 사람이 그걸 워치기 안대유? 공부허신 냥반덜이나 알지.”

바쁜데 별것을 다 묻는다고 달갑지 않은 내색으로 대꾸하는 바람에 머쓱해져 얼른 발길을 돌려 나왔다.

관너머에서 창말로 넘는 언덕엔 조선朝鮮시대에 남포현藍浦縣의 남창고南倉庫였던 즉, 나라에서 곡식을 쌓아두던 창집이 있었다. 지금도 그 터에서 기와장이 출토된다고 한다. 창암이란 이름도 바로 이곳에 창집이 있었기 때문에 부른 창촌에서 비롯되었다. 창말은 서른 두 집이 사는 비교적 큰 마을로 아래뜸과 위뜸이 있다. 관너머에서 넘어오면 이내 닿는 곳이 아래뜸이다.

마을길에 콩대를 널어놓고 타작하는 노부부가 있는데 곁에 네 살짜리 꼬마가 말보행기를 타고 노는 모습이 요즘 농촌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다.

창암리에도 고인돌이 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바위를 각시바위라 하고 들 건너편에 우뚝 솟은 바위를 신랑바위라 하는데 바위배기에 있는 장수바위를 포함해 모두 고인돌로 알려져 있다. 각시바위는 신랑바위에 비해 부드럽고 평평하여 마치 치마를 펼친 것처럼 여성스러운 모습이고 반대로 신랑바위나 장수바위는 모나고 뾰족하니 남성스러운 모습이다. 주민들은 이 각시바위를 신랑바위와 한 쌍으로 맺어 놓고 가끔씩 제를 지내왔다. 시집 못가는 처녀가 이 각시바위에 제를 지내면 시집을 가게 된다는 전설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장가 못간 총각이 신랑바위에 제를 지냈다는 이야기는 누구도 들은 바 없다고 한다.

그런데 바위 이름에 대해 익명으로 주장하는 다른 이야기도 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바위의 모양이 남성의 귀두와 같다하여 그것이 사내바위이고 건너편 바위는 모두 사내를 찾아와 맴돌던 계집바위라고 한다. 그러므로 시집 못가는 처녀가 이 사내바위에 제를 지내면 그해에 좋은 신랑감을 만나서 시집가게 된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신랑바위와 각시바위는 나중에 생긴 이름이고 예전엔 사내바위와 계집바위들이라 했다며 자기를 밝히지 말라는 노인이 있다.

역이 있었던 남전마을

   
▲ 주산면 창암리 남전마을 전경
삼곡리로 넘어가는 지방도로를 따라 청룡모롱이를 돌면 창암 3리인 남전마을 입구가 나오고 입구부터 바위가 많은데, 그 앞 길 건너 배바위들 논배미에 큰 바위 두개가 있다. 논에 물이 차면 배처럼 보인다고 배바위라 부르는 이 두개의 바위도 고인돌이다. 마을을 올라가며 보니 역시 여기저기 바위가 많다. 위뜸으로 올라가며 보니 고인돌로 보이는 바위를 포함해 바위가 줄을 서 있다. 창암리란 이름대로 뒷산에도 병풍을 닮은 병풍바위까지 바위마을이라 해도 무리가 아닐 것 같다.

남전藍田마을의 위뜸 부근엔 옛날 역이 있던 터가 있다. 이곳은 조선 후기까지 남전역藍田驛이라 하는 역이 있었다. 남전역은 조선시대 이인도利仁道 찰방察訪에 속한 역 가운데 맨 끝 역으로서 대마 2필, 기마 3필, 복마 5필, 사내종 45인, 계집종 54인을 두고 있었는데 고종 건양建陽 원년元年에 폐지되었다.

마을주민 누구라도 찾아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마을 회관도 비어 있고 바쁘게 일하는 사람 외엔 눈에 띄지 않아 알아낸 것도 없이 나오기가 아쉬워 뒤돌아보니 멀리 운봉산이 보인다. 운봉산 기슭엔 물탕이 있는데 물이 좋아 정월 보름날에는 물도 마시고 목욕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창암리 서쪽 끝 미륵모탱이에 미륵부처상이 서 있는데 본래는 채석장위에 있던 것을 채석장을 하면서 밑으로 내려놓았다고 한다. 이 미륵상의 눈을 긁어 다려먹으면 낙태의 효험이 있다하여 사람들이 긁어가는 바람에 눈자위가 움푹하니 마모됐다.

미륵모탱이를 돌며 사진이라도 한 장 찍겠다고 생각했으나 까닭 없이 발걸음만 재촉하며 정작 미륵모탱이를 돌아올 땐 까마득히 잊고 말았다. 이루는 바도 없이 마음만 바쁜 탓이다.

/프리랜서 안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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