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곳을 떠난지 42년 됐어요. 남편은 고향에서 이런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고 연락을 받고 1주일 동안 잠을 설치더군요. 그리운 마음에서였겠죠. 오늘 와서 보니 많은 것들이 변해 있네요. 옛 지인들도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저처럼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구요. 하지만 오늘밤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너무 반갑고 좋아요.”서른 중반에 고향을 떠나 수원에서 생활하다 이제 칠순을 훨씬 넘긴 나이로 오랜 만에 고향을 찾아 반가운 지인들을 만나게 돼서 너무 좋다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황의순할머니(77세)의 말이다.

미산면 평라리 자라실 마을.

옛날 60가구 3백여명이 넘는 주민들이 북적이며 살던 곳이었지만 현재는 10여 가구 20여명도 채 되지 않는 쓸쓸하고 조용한 마을로 변한 곳.

지난 8일 조용하던 이 곳  마을회관이 오랜만에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와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인사로 시끌벅적했다.

다름 아닌 자라실이 고향인 한 사람, 바로 윤인희씨가 ‘고향 찾기’의 일환으로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져 생활하는 동향인들을 초청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저도 고향을 떠났다가 지난 해 8월에 돌아왔어요. 43년여 만이었죠. 객지에 있으면서 고향어른들을 초청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곤 했는데, 어른들께서 너무 좋아하시더라구요. 또 어르신들께서 ‘내 살아생전 또 만날 수 있을까’라며 씁쓸한 말씀을 하시기도 했구요. 고향에 돌아와 이런 모습들이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고, 오랜만에 고향에 모이신 어른들이 즐겁게 지난 이야기 하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귀가하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또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지속적으로 마련됐으면 하는 소망이고, 젊은이들이 주축이 돼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윤 씨의 말이다.

‘고향 만남의 자리’는 토요일부터 1박 2일의 일정으로 마을회관과 윤인희씨 자택에서 진행됐으며, 오래전 고향을 떠나 서울·수원 등 전국 각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82세의 노인부터 60, 70대 자라실 동향인들이 속속 자리를 함께 해 밤을 지새워 가며 그 동안 마음속에 안고 있던 정겹고 아늑한 옛날 추억들을 풀어내는가 하면 일요일 아침에는 옛날 뛰어놀았던 동네 이 곳 저 곳을 돌아보며 옛 추억을 되새기기도 했다.

이와 함께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어른, 친구들을 위해 고향을 지키며 생활하고 있던 주민들은 윤 씨를 도와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쑥·취나물·민들레 등을 뜯어 국도 끓이고 나물도 만들어 대접하는 등 정겨움을 전했다.

“다른 마을회관을 보면 대부분 비어있는 데 이 곳에는 연일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식사도 해 드시고, 또 여름철이면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방문해 마을회관에 머물면서 쉬었다 가기도 하구요. 요즘 인성교육이 부재한다고 말씀들 하시잖아요. 자녀들과 함께 방문해 고향을 보여주고, 맑은 공기도 나누며 지냈다 가는 것도 하나의 교육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행사가 고향과 농촌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이 곳 자라실에서 4대째 생활하고 있다는 송광석씨의 말이다.

‘고향 만남의 자리’를 준비한 윤 씨는 미산초(30회), 주산중·농고를 졸업 후 서울로 상경했으며, 60년대 서울에서 농촌운동과 당시 버스안내양 야학 교사, 고향의 농산물과 도시민 직거래 주선, 고향 어른 초청 경로잔치 등을 개최한 바 있다. 또한 고향에 동향인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 해 귀향했으며, 그 첫 번째로 이날 행사를 열게 됐다.

“생활이 넉넉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줘서 고맙고, 이를 계기로 앞으로는 주말을 이용해서라도 가족끼리, 친구끼리 함께 고향을 자주 방문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서울에서 왔다는 윤 씨의 친구 염영희씨의 말이다.

이날 자라실 마을 ‘고향 만남의 자리’에는 50여명의 동향인이 모였으며,  동향인들은 고향에서 밤 깊은 줄 모르고 지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한편 이 곳 주민들은 “자라실 마을회관에는 노인들이 늦은 저녁까지 함께 생활하고 있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가로등이 너무 멀리 있어 위험하다”며 “노인들의 안전을 위해 가로등 설치가 필요하다”고 소망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