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보령시 종합사회복지관 회의실에서는 75상가 1층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75상가 주택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2시간 남짓 진행된 설명회에 참가한 주민들은 설명회가 끝날 때까지 심각한 표정을 떨치지 못했다.
이어 19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이번에는 75상가 2·3층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같은 내용의 주민설명회가 벌어졌다. 2·3층 주민들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94년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지루하게 끌어오던 75상가의 재개발문제가 이제는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것임을 주민들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설명회에서 김종하 건설국장은 "현재 75상가 문제가 답보상태이지만 주민들이 합심만 한다면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그 동안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조금씩 양보한다면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산권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어느 누구도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오지 못하던 75상가 문제는 지난해 8월 이 건물이 사용금지 및 긴급보강조치가 필요한 'E등급'으로 판정 받으면서 시와 주민들로 하여금 '이번에는 해결해야 한다'는 공통분모를 갖게 했다.
75상가 건물상태
현재 75상가 건물의 위험성은 건물의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콘크리트와 철근의 부식정도가 너무 심하게 진행돼 있고 비가오면 물이 건물에 내재돼 있다가 나중에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경우는 즉각적으로 보완, 재건축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과하중이다. 75상가 최초의 설계에는 단층건물에 상가만 짓도록 돼 있었으나, 상가가 들어선 후 2·3층 주택을 증축하게 됨으로써 지반침하 등이 나타났고 이후 화재 또한 결함의 원인으로 분석될 수 있다. 건물의 유지관리가 안되고 방치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부분별로 살펴보면 ▲계단실의 증축이 건물 하중부담을 높였다. ▲화재가 발생했던 부분은 현재 누수현상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건물전체가 물을 머금고 있다. 이로 인해 철근의 부식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화재당시 벽면 등에 균열이 심하게 나타났다. ▲75상가 중에서도 취약부분인 2층의 경우 부분적으로 10cm 이상 침하가 나타났다. ▲복도의 기둥과 천장의 보에 균열이 발생한 상태다. 하중문제로 침하되면서 균열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콘크리트를 방치해 철근까지 중성화됐다. 이로 인해 철근 부식이 빠르게 진행됐다.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지는 등의 현상이 발생중이다.
75상가의 안전진단을 담당했던 (주)선엔지니어링의 김영출 부장은 75상가 건물의 상태를 인간에 비유해 '4, 50대의 나이에 중병을 앓고 있는 상황'이라고 압축했다.
그는 "(75상가 건물이)가장 안좋은 조건만을 갖고 있는 상태"라며 "전체적으로 부식된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의 개발모델제안
보령시는 75상가 재건축조합에서 지금까지 추진해 온 지하 4층, 지상 18층건물 신축이 현실성이 없다는 점을 들어 건축규모를 대폭 축소한 세 가지의 안을 제시했다.
제1안은 현 건물에 상가1층을 추가한 형태로, 지하1층(주차장), 지상1·2층은 상가, 3·4층은 주택으로 신축하는 것이다. 이중 2층 상가를 분양하게 되며 이 경우 주민들이 조합원로 2천8백여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제2안은 건물전체를 상가로 짓는 안이다. 이 경우 1층 상가조합원의 경우, 토지대금을 포기하는 대신 1층 상가를 소유하게 되며, 2·3층 주택조합원은 3층상가 중 54개의 점포를 대물로 받게된다.
제3안은 현 건물규모로 신축하는 형태로 지하1층(주차장), 지상1층은 상가, 2·3층은 주택으로 지어진다. 이 경우 조합원별로 4천여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보령시입장
두 차례의 주민설명회를 통해 보여준 보령시의 모습은 단호하면서도 주민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최대한 주민의 입장을 반영하면서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관련법을 적용해서라도 75상가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다.
시는 법적인 문제해결의 근거로 재난관리법 제35, 36, 37조를 들고 있다. 이 조항들은 각각 대피명령과 경계구역의 설정, 강제대피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는 현재 조합에서 추진중인 재건축 안에 대해 조합원간 합의, 계약 등 해결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오는 4월부터 법적인 해결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시의 추진일정을 보면 3월20일까지 경계구역을 설정한 후, 23일 '4월말까지 건물을 비울 것을 요구하는' 퇴거명령서를 발송하게 된다. 이어 두 차례의 퇴거촉구명령을 한 후 5월중 단전·단수조치를 시행하고 강제대피 시킨다는 계획이다.
주민입장
75상가 재건축조합은 95년 당시 지하 4층, 지상 18층 규모로 75상가를 재건축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몇 차례의 건설업체 부도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컨설팅회사와 함께 추진했다가 건설업체가 부도나는 등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또 IMF관리체제 이후에는 국내 경제사정 악화로 현재는 18층 재개발이 무모했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같은 건물에 있지만 현재의 상태는 1층 주민과 2·3층 주민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는 못하다. 1층은 토지소유자, 2·3층은 점유자로 서로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만큼은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특히 보령시가 2·3층 주민에 대해 배상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주민들은 환영하고 있다.
재건축조합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시에서 2·3층 주민에게 배상을 해주겠다고 나선 것은 잘한 일"이라며 "그러나 15-20년을 이곳에 살아온 주민들에게 시가 현실적으로 배상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는 "시가 전담반까지 만들어서 75상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을 주민들도 인정하지만, 마지막까지 주민의 입장에서 해결방안을 찾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1층과 2·3층 주민들은 25일 함께 만나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김병철기자 mplan@poryon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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