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울 만큼이나 몰려오는 외로움.

귀에 익지 않은 새, 로빈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지면 오레곤의 작은 마을 힐스보로의 봄은 울먹이도록 깊은 향수의 늪으로 나를 몰아넣는다.

1969년 나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농업근대화시책의 일환으로 각 도에서 총 15명을 선발(문교부소속) 3개월의 특별교육을 실시, 그 중 11명을 재선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미농장주협회’ 초청 농업훈련을 각 직종에 따라 미국의 각 지역에 분산 배치해 실습과 교육을 병행하게 했다.

그 중에 나는 오레곤 주의 힐스보로에 자리잡은 한 농장에서 미국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내가 선택한 낙농 농장인 ‘Fry Dairy Farm’(후라이 데리 팜)은 수십만 에이커의 규모에 경비행기와 차량으로만 그 이동이 가능한 방대한 초지시설,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들의 낙농업은 귀국 후 우리 낙농에 대입해야 할 부분과 여지를 찾는 데 나는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되었다.

고심 끝에 선택했던 직종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미 농자협회에 통보, 직종을 화훼나 정원수 농장으로 옮겨 줄 것을 요청했다.

얼마 후 나는 힐스보로 라는 곳에 자리잡은 ‘이와사끼 부러더스’라는 일본인 형제가 운영하는 화훼농장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 곳에서의 나의 숙소는 Trailer Car(트레일러 카 : 요즘은 우리 눈에도 그리 생소하지 않지만)라는 당시 나에겐 처음 접하는 이동식 차량 주거시설에서 나의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일본인 2세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이 곳 화훼농장에는 일본인 훈련생 3명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일본의 농대를 졸업하고, 미 현지 실습생으로 미국의 농업을 체험하고 배우고자 이곳에 와 일하고 있었으며, 일본에서는 매년 100여명의 훈련생이 미국의 각 지역에 파견돼 실습에 임하고 있었다.

<Cal-i-For-nia>

다시 시작된 나의 농장생활은 미국 내의 일본인 농장에서 일본인들과 같이 하게 되었다. 당시 미 농장의 1/4이 일본인 2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으며, 규모나 그 수로 보아 미국 농업의 일부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나의 일과는 5시 기상으로 시작됐고, 도로를 오토바이로 달려 10여분이면 다운타운의 수퍼마켓에 중국인 농장에서 생산된 켈리포니아 쌀은 우리 이천쌀에 못지 않았다.

일본인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된장, 고추장, 라면, 새우젓들은 나의 식단을 풍성하게 해 주었다. 더욱이 1불이면 약 반 양동이나 되는 닭날개를 구입할 수 있어 나의 중요한 영양원으로 충분했으며, 식품의 저렴한 가격은 자취를 시작한 나의 미국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다.

농장 일은 처음 나에게 힘에 겨웠으나 얼마 안가 일본인들을 따라 함께 할 수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