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잊지 마세오’ 라는 꽃말과 함께 김규환 님의 물망초라는 노래 말은 우리들 귀에 친숙하다.
저녁이면 작은 잎을 오므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 영락없이 청 보랏빛 꽃잎을 활짝 피워 신비감을 더해주던 물망초. 담장아래 한 무리가 아침이슬을 머금은 채 함초롬히 피어 작은 환희를 안겨주더니 어느새 그마저 다 저버린 8월이다.

간간이 뿌려대던 소나기마저 자취를 감춘 듯 연일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무더위 속에 삶이 무감동으로 이어지기 쉬운 나날들. 이 지루한 더위를 조금이나마 잊고자, 한 세기를 뛰어넘어 여전히 우리에게 생의 기쁨을 안겨주는 사람이 있으니 여기 그의 음악적 업적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기나긴 시간을 되돌린 것만큼이나 지정학적으로 먼 동 유럽국가들 중 체코가 낳은 스메타나의 음악을 소개해보고 싶다.

그의 작품 중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나의 조국)인 교향시는 한 나라의 역사, 전설, 종교, 서정성 등이 두루두루 작품 속에 녹아든 대작이다.

스메타나는 이곡을 프라하시에 바쳤다. 그 당시 체코는 함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로부터 독립의 첫걸음을 내디딘 시기였다. 교향시 제 2곡이 되는 몰다우(불타바)강은 체코의 남쪽 고원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강으로 프라하를 지나 엘베강과 합류하여 독일로 흘러가는 강이다.

몰다우강의 서곡은 수원이 묘사되고 그 뒤를 이어 숲 속 사냥의 광경, 마을에서 벌어지는 농민의 결혼식, 즐거운 춤 등이 묘사된다.

이 강은 두개의 수원으로 비롯되어 바위에 부딪혀 햇빛에 반짝이면서 강폭을 넓혀간다. 강가에는 사냥의 뿔피리와 시골의 춤곡이 메아리치고 밤에는 물의 요정이 춤추는 다소 동화적인 요소로 전개된다. 이러한 줄거리를 비롯해 모두 여섯 곡으로서 아름다운 곡과는 대조적으로 비극의 역사 또한 간직하고 있다.

체코인들에게 추앙 받고 있는 얀 후스<Jan Hus> 와 그의 사상, 그를 따르던 후스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보다 100년 앞선 체코의 교회 개혁운동에서 후스는 중세 교회 치부였던 면죄부 판매를 준엄히 비판한다.

이에 대해 귀족이나 교회 지도자들 등은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후스의 개혁운동을 강력하게 견제한다.

그는 수도 프라하에서 모든 교회활동을 중지 당한다.

후스의 신변안전을 약속했던 황제 지그문트까지도 기회주의자로 전락해 그에게 등을 돌린다. 그가 끈질기게 주장했던 입장을 철회하도록 강요받았지만 후스는 사람보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향한 순종의 길을 택한다. 마침내 후스는 1415년 7월6일 콘츠탄츠 화형대에서 이단자의 누명을 쓰고 죽어간다.

화형되기 전,  남긴 글에서 그가 전 생애를 통해 추구했던 진리가 무엇인지 증언해준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여, 진리를 찾으라, 진리를 배우라, 진리를 지키고 죽기까지 수호하라. 그것은 진리가 죄와 악마와 영혼의 죽음으로부터 너희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진리를 사수하기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던 후스의 눈부신 삶이 스메타나의 가슴을 뒤흔든 것일까.

그가 이곡을 작곡할 때에 이미 병마가 침범하여 소리가 들리지 않는 적막의 세계로 빠져들었다고 한다. 정신적 균형을 잃어 병원에서 생애를 마치기까지 모든 기운을 다 쏟아 부었기에  더욱더 애잔하다.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경험보다는 객관적이며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국민의 정서를 반영한 곡이기에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닐까.

많은 (藝人)예인들이 불꽃같은 예술 혼을 꽃피운 그 이면에는 이리도 가슴시린 사연이 숨겨져 있다.

삶의 굴곡이 심할수록 아름답고 오묘한 그들만의 무늬 결을 창작해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창조주께서 고통을 이겨낸 자에게 보상해주시는 위로의 상급이라는 생각이다 .

마치 오랜 풍설을 겪어낸 나무로 만든 악기라야 깊고 맑은 소리를 내는 오보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