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로컬가이드 회원인 임 선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중학교 1학년 도덕 수행평가가 ‘보령의 열녀와 효자에 대하여 조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임 선생의 자녀와 우리아이, 그리고 같은 로컬가이드 회원 자녀 한명 등 이렇게 셋이서 보령의 열녀와 효자비를 찾아서 답사를 갔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우리는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로 보령지역 문화해설사인 ‘로컬가이드’회원들이다.

이 모임은 4년 전 보령인력개발센터에서 주관한 ‘보령로컬가이드’교육생들의 모임이다. 교육수료이후 우리는 방학이면 보령의 문화재를 비롯해 청와대, 서대문형무소, 동학농민전쟁의 역사 등을 찾아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체험학습을 실시해왔다.

요즘은 주 5일제 토요 휴업이 있는 날에 체험학습을 실시한다.

마침 주제가 우리가 늘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라서 흔쾌히 약속을 하고 6월 16일, 임 선생의 퇴근시간인 오후 5시에 맞춰 아이들과 함께 출발을 했다.

내가 운전을 하고 임 선생의 안내로 답사를 하기로 했다.

늦기 전에 돌아오려는 일정을 잡다보니 먼 곳은 갈 수가 없어 청라지역으로 범위를 좁혔다.

보령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열녀나 효자가 많은 고장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청라지역은 선비들이 많이 살았던 고을이어서인지 다른 마을에 비해 열녀나 효자가 많다는 임 선생의 설명이다.

맨 처음 도착한 곳은 대천에서 보령병원 가기 전 500m 지점에 위치한 곳에 정려가 세워진 곳이 있어 내려 살펴보니 천휴당 이공의 신도비였다.

그에 얽힌 사연은 자료에 나와 있지 않아 궁금한 한편 아쉽다.

비의 한자를 해독할 수 있다면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아이들의 숙제인 관계로 정려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정려(旌閭)는 조선시대에 충신, 효자, 열녀 등을 지정해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을 말한다.

다음 목적지는 보령 병원을 지나 저수지를 지나 청라면 장산리에 있는 ‘구만원 효자비’였다.
그 곳은 길가에 있지 않고 언덕위에 있어 개인의 고추밭 사이로 지나가야 했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한 정려 안에 한 분의 효자비와 두 분의 열녀비가 함께 있었다. ‘구만원’은 통덕랑이라는 벼슬을 지냈는데 부모를 지성으로 모시는 그 높은 뜻을 기려 조정에서 알고 특명으로 효자비가 내려졌다고 한다. 

그의 부인 ‘한산이씨 열녀비’가 바로 옆에 있다. 그 왼쪽에는 ‘언양 김씨 열녀비’가 있는 데 그 분은 숙종 때 선전관이었던 장군 ‘구익수’의 처로서 그 남편이 죽자 뒤따라 자결하였다고 한다. 또한 ‘구효민’도 통덕랑이었는데 그 부인은 남편이 죽자 뒤따라 자결했다.

세 번째로 간 곳은 청라면 옥계리에 있는 ‘서한경 효자비’다. 다른 곳은 능선이나 언덕에 있는데, 이 서한경 효자비는 동네 안에 있었다.

서한경은 부친의 병환이 위급해지자 오른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부친의 병환을 낫게 하였다고 한다.

옛날이야기 속에서만 있는 줄 알았던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어떻게 그런 효를 할 수 있었을까 존경심이 들기도 했다.

네 번째는 청라면 신산리 마을 노인회관 옆에 위치한 ‘신상돈 효자비’를 찾아갔다. 그는 80세의 모친이 중풍으로 13년간 병석에 누웠을 때 대소변을 받으며 정성을 다해 시중을 들며 모친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이 힘을 모아 효자비를 세웠다는데 가장 최근에 세워진 효자비라고 한다.

다섯 번째는 청라면 장현리 하정전 마을에 위치한 ‘신석붕 효자문’이다. 신석붕은 평산사람으로 자는 성오(聖吾)인데 효로써 교관에 올랐다.

다른 효자비와 달리 전통가옥으로 지정된 ‘신경섭 가옥’ 대문에 있었는데 비석이 없이 홍살문에 효자라는 글이 씌여져 있었다. 그곳을 찾아 갈 때 동네 사람에게 효자비를 물으니 모르더니 신경섭 가옥을 물으니 일러준다. 홍보가 덜 된 탓으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후손인 ‘신유철’씨의 문패가 달려 있다.

마지막 코스로 청라면 의평리 ‘정씨 열녀문’을 찾았다. 청라면에서 대천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2km가면 도로변 남쪽 의평리 야산 구릉 북향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진주 정씨는 신기(申嗜)의 처로서 남편이 죽은 후 그 뒤를 따르기 위하여 석회를 삼키고 간수를 마셨어도 죽지 않아 게장을 꿀에 타서 먹고 죽었다고 한다.

청라면 향천리에 열녀각이 세워졌으나 1989년 의평리로 이전하였다. 그 안에 ‘신종해’의 처 ‘한산이씨 열녀비’가 함께 있었다.

열녀는 어찌 보면 조선시대 유교사상의 희생양이다. 남편이 죽으면 재가도 할 수 없는 폐쇄된 봉건사회 속에서 여자들에게 억지로 강요된 ‘찬란한 죽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녀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추앙받는 것은 점점 타락해가는 우리 성(性)문화의 마지막 보루(寶樓)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부모를 모시기 싫어하는 요즘 신세대들에게 효(孝)의 의미를 일깨워주려는 의미처럼 말이다.
‘구약성경』속의 <룻기>의 룻은 남편을 잃고,  모압지방의 이방인임에도 시어머니와 함께 예루살렘에 돌아와 시어머니를 지성으로 섬겼다. 결국 룻은 ‘보아스’라는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되는 영광을 얻는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에게 효를 행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기다리는 것 같다.

이번 답사를 통해 우리의 아이들이 그러한 어른들의 바람을 깨달았으면 한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는 것을 …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늘 의욕적으로 공부하시는 임 선생이 언젠가는 저 비문들의 탁본을 떠 해석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거기에 덧붙이는 운전자의 생각.

 “선생님, 해석 하시면 우리 꼭 책으로 엮읍시다. <보령의 효자비, 열녀비 해석문> 이란 제목으로요.”

언젠가 임 선생의 꿈이 이루어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오늘의 두 시간 반에 걸친 청라지역의 열녀와 효자비에 대한 답사를 마친다. 더불어 아이들의 수행평가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욕심을 부려본다.

2005.  6.   26.
안내 : 임혜순, 정리 : 박승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