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을 향해 오르내리노라면 가득히 흐르는 밤 향기가 손끝을 끌어 당긴다.

이 때쯤이면 한창 바쁘던 일손들도 마무리 되어 가는 시간임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이때 동네에서는 성장한 여러 자손들이 칠순을 맞은 어머니를 위해 이웃 어른들에게 식사 대접하려고 인사를 다닌다.

몇 집 건너에 계신 이웃사촌도 당신 일처럼 좋아하신다.

당신 잔치인 양 꼭 오라는 다짐을 받는 후덕하신 분이 어머니 모시고 같이오라고 나에게도 당부를 하신다.

책가방을 놓기 전에는 오지 않던 손녀가 어엿한 사회인으로 입문하고 하루 다니러 온 것을 보시고는 잔치에도 가고 싶고 손녀와도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시는 모습이다.

어느새 별들이 가득한 시간으로 흐르고, 어머니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양 아직도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어머님이 대문안으로 들어오시며 “누가 오라고 하나, 힘들다.”

늦은 시간이라도 손녀 상봉을 제대로 하실 모양이다.

첫손녀가 서울에서 유학하며 취업문을 두드렸던 그 간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하심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이 거쳐온 얘기가 곧 손녀이고, 당신딸의 얘기임에도 먼 이국에서 지내는 얘기처럼 궁금하기만 하고, 또 대견해 하기도 하며 말문을 튼다.

고령임에도 아랑 곳 하지 않고 세상사의 어머니의 생활이기도 하고, 내게는 올곧은 지표를 세워게 하는 분으로 자리하고 계시다.

그런 어며니를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마냥 동안(童顔)의 모습이다.

손녀와 수박 한쪽을 나눠 먹으며 회포인지, 보고를 받는 건지 우리는 가끔 어머니에게 통역아닌(신세대 용어) 통역을 해주곤 했다.

잔칫집의 손주들이 노래도 잘하고, 며느리들도 형제같이 그렇게 잘 한다며  업고서 객석마다 돌면서 인사하던 모습이 좋더라며 화답을 하신다.

한잔 하신 할머니는 손녀의 손을 잡고 눈 마주치며 혼자 고생하던 모습에 눈물을 글썽거리신다.

방 얻느라고 고생한 얘기, 친구들과의 스터디하던 얘기, 친구 부모님이 부식거리를 많이 넣어 주셔서 냉장고만 봐도 기분 좋았다는 얘기를 하는 동안 할머니는 손녀의 손을 놓을 줄 모르신다.

잔칫집에서 노래 잘하던 그 집 손주만큼이나 잘 자라주었다며 대견해 하신다.

내 새끼라는 것을 할머니를 통해서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기만 하다.

잔치에 다녀온 할머니는 앞으로 많이 다니고, 배우라고 하시며 시계를 보신다.

혼자 수십년을 살아오면서 키워낸 자식들이 한껏 모셔놓고 대접한 자리에 다녀 오신 할머니는 자꾸만 손녀에게 더 전하고 싶으신 것이다.

시간은 빠르기만 하다.  다시 한번 손녀를 보며 “시집도 잘 보고 맞춰서 가야만 한다.” 며 손주사위까지 윤곽을 그려놓으신다.

“저 좋으면 되지 않아요?”

“그래도 그런 것이 아니다.” 손녀는 할머니 말씀을 들어야 한다며 손을 짱하며 맞춘다.

손녀앞에 푹 빠져있는 할머니는 자정이 다 되어가는 걸 보고서야 아쉬워하신다. 결국 내일 아침을 기약하고야 말았지만 할머니는 분명 뜬눈으로 기다릴 것임에 분명하다.

“내일 몇시에 갈꺼냐” 는 물음에 하얗게 피어 자고 있는 밤꽃도 알아 챌 수 있을 것이다.

아들과 며느리는 할머니의 손녀 사랑으로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손녀와의 짧은 상봉이 꼭 당신만이 누리고 싶은 행복한 시간이었으리라.

<보령도서관 주부문학 모임 보령예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