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意思)의 자유가 만발하는 민주시민사회는 바람 잘 날이 없다. 각양각색의 자기 주장들이 뒤섞이다보니 때로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지역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님비와 같은 고약한 형태의 여론이 들끓기도 한다.

시대가 그런 터라 작금의 자치행정은 이같은 시민사회의 갈등을 조정해 바람직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가치통합의 과정에 큰 비중을 둘 수 밖에 없다. 더러는 그 능력이 자치행정의 성패를 가르는 바로미터가 되는 경우도 많은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애꿎은 단체장들만 골머리를 앓게 된다. 소신껏 강하게 밀어붙이다 보면 독선적이라는 비난을 받기 십상이고, 이말 저말 다 귀담아 들으면서 현안을 지지부진 끌다보면 또 우유부단하다는 손가락질을 피할 수가 없다.

이 때마다 단체장이 할 수 있는 기가막히게 좋은 방법이 하나 있는데, 위원회를 구성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보자는 것이다. 단체장으로선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게다. 그러나 시민들의 진솔한 의겸수렴을 위해서 보다는 궁여지책으로 이 전략을 사용하다보니 이름도 잘 기억할 수 없는 위원회들이 무슨 무슨 조정위원회, 특별위원회, 심의위원회, 평가위원회...등등 하는 백화점 식으로 위원회들이 만들어지게 됐다.

보령에도 시에서 주관하는 각종 위원회가 50개가 넘게 구성돼있다. 이 중에는 그 활동이 활발한 위원회도 있지만 1년에 단 한차례도 열리지 않는 이름 뿐인 위원회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민간인이 위촉된 위원회라 할지라도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조율해 각종 제도와 행정을 민주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대신 행정의 편의만 도모하는 모양으로 비춰지고 있다. 관계당국의 들러리 내지는 면피용 제도라는 말이다.

행정에서 예민한 사안일수록 위원회를 핑계 삼는 일이 빈번해 지고 있다.

결국 민의를 반영해 투명하고 공정한 행정을 펼치기 위한 수단으로 마련된 제도가 책임을 지고 싶어하지 않는 행정가들 편에서 보면 책임을 모면해 주는 고마운 제도로 변칙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다수에 의해 합의된 공공의 가치를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아직은 성숙되지 못한 우리네 시민사회의 자화상이긴 하다. 그러나 부실한 위원회 운영이 자초한 측면도 많다. 필자도 더러 그런 자리에 끼여들 때가 있지만, 실망을 금치못할 때가 많다.

지역의 명망가라는 이유로 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받는 사람들, 전문성이 전혀 없으면서도 얼굴 내밀기를 좋아해서 여기저기 겹치기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위원회 회의에 참여해서 단 한마디의 발언도 없이 끝나면 밥이나 축내는 사람들, 인적구성부터 도저히 공정한 결론을 도출해내리라고 기대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로는 지자체의 주무부서가 원하는 일정한 결론 도출을 위해 인적구성을 전략적으로 조직한 느낌이 드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렇듯 위원회 행정의 문제점을 일일이 열거하기에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시민사회에서 위원회는 지역사회의 공동 선(善)을 이끌어내는 최후의 보루다. 위원의 선정부터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위원, 회의 결과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위원회는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형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풀뿌리 지방자치의 정착을 위해서 문제점이 노출된 위원회 행정을 과감하게 개선하고 위원회가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어설픈 제도라는 오명을 씻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