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들은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마음으로 전두환 대통령 각하, 영부인 이순자 여사를 모시고 이곳 대청호에 어린 잉어 20만 마리를 놓아 기르니 우리의 자연은 더욱 아름답고 풍요로워 지리라”
1981년 3월 한국자연보존협회가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의 방문을 기념해 대청댐 물문화관 광장에 세운 비문이다. 높이 1.5m, 폭 5m 가량의 대리석 기념비는 지금 보아도 재질과 찬양 문구가 최상급이다.
4대강 유역 중 하나인 금강에 5년 공사 끝에 대청댐이 만들어졌는데 이 정도 선물은 당연한 것 아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두환과 대청댐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
댐이 착공된 때는 박정희 전대통령이 재임하던 1975년 3월이다. 완공된 해가 전두환이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해 간선으로 대통령에 선출되던 해인 1980년 12월이다.
대청댐물문화관 광장에는 박 전 대통령의 치적이 담긴 대청댐 조성비가 큼지막하게 서 있다. 실제 댐 준공을 사실상 진두지휘했으니 이쯤은 수긍할 만 하다. 하지만 다 지어놓은 대청호에서 열린 ‘새끼 잉어 풀어먹이기 행사’에 참석했다고 ‘대리석 방문기념비’를 세운 것은 누가 봐도 오버다.
게다가 수문 옆 대청호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요지에 세워 놓았다. 이쯤되면 표 안나는 치적 가로채기다. 대청댐을 찾는 사람마다 전 전 대통령 부부의 ‘대청호 사랑’ 정도를 기념비 크기에 대비시켜 가늠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전지역시민사회단체가 ‘뻐꾸기 알낳기식’ 기념비 철거를 공식 요구하고 나선 것은 1996년 경이다. 5공 청산 작업이 본격화되던 당시 전 전대통령은 내란 등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때이기도 하다. ‘역사의 죄인이 정권홍보를 위해 세운 기념비’라는 것만으로도 철거 필요성은 흘러 넘쳤다.
하지만 찬양비는 21세기를 그 자리에서 맞았다. 누군가에 의해 크게 훼손돼 지난 해 4월에서야 슬그머니 철거된 사실도 최근에서야 알려졌다. 관리주체인 수자원공사 측의 전언에 의하면 누군가 돌망치 등으로 두들겨 기념비를 쪼개 놓았단다.
수자원공사의 자진철거 배경에는 ‘훼손된 시설물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역설이 작용한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찬양비에는 전 전 대통령 부부의 친필이 들어 있지 않아 수자원공사 측의 ‘문화테러’라는 반발은 없었다.
하지만 안심할 일은 아니다. 전 전대통령 부부가 친히 풀어 먹인 잉어를 잡아 먹은 사람들이 ‘기념생물 복용죄’로 뒷탈이 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3.1절을 맞아 매헌 윤봉길 의사 사당(충의사) 앞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을 떼어낸 혐의(공용물 훼손죄)로 구속된 양수철 전 민족문제연구소충남지부장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박 대통령이 쓴 현판 글씨 또한 방문 기념이다. 1968년 윤 의사의 의거일인 4월 29일 이곳을 방문해 준공식 겸 의거기념행사를 하면서 써서 내걸었다. 마침 글씨 측면에 ‘대통령 박정희’라고 적었으니 망정이니 이 마저 없었으면 친필여부 공방이 있었을 게 분명하다.
박 전 대통령의 앞선 기록문화는 칭찬할 만하다. 일제시대 만주군관학교에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라는 이름으로 자원 입학한 그는 조선인 졸업생 중 처음으로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고 선서한 기록을 남겼다. 또 일본 천황을 위해 손가락을 베어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報國 滅私奉公)” 이라고 혈서를 썼다는 기록도 없애지 않았다.
대신 친필 현판을 내걸어 조국의 제단에 목숨던진 윤 의사의 ‘충의’를 자신의 것인양 차용하려 했다. 업적 가로채기의 진수인 셈이다.
따지고보면 사적과 보물로 지정된 충의사는 성한 데가 하나도 없다. 애초 박 전 대통령에 의해 지난 1967년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졌다. 충의사 본전에 봉안된 윤의사의 영정은 친일 경력의 장우성 화백이 그린 것이다. 여기에 사당 한 중앙에 내걸린 현판마저 ‘박정희체’ 였다.
현판철거를 놓고 ‘문화폭력’ ‘문화테러’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상호공존을 위한 사회적 합의없이 무조건 떼내고 보자는 방식은 안된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명제가 성립하려면 대화를 제의한 사람에 대한 열린 자세가 전제돼야 한다.
양씨와 시민단체에서는 1년여 전부터 예산군에 철거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반면 예산군은 철거요구에 애써 못 들은 척 귀를 닫아왔다. 정부와 국회는 과거사 청산작업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고 있다. 대화와 논의를 거부하는 빗장걸기야 말로 ‘문화폭력’이다.
예산군이 논의에 나설 의지나 ‘부정적인 문화유산이라도 남겨서 기록해야 한다’는 마인드만 있었던들 현판이 강제로 떼어지거나 애써 쪼개고 훼손할 수고는 없었을 것이다. 논란을 무시하고 무조건 원본 글씨를 이용한 ‘박정희체 복원’을 추진하고 나선 현실은 무엇이 ‘문화폭력’에 가까운지를 보여주는 실예다.
‘쪼개고 부수기 전’에는 자진철거나 완전철거는 없다’는 똥고집. 이것이 대청댐 전두환 찬양비 철거와 충의사 박정희 현판 철거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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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5.2 목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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