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대평 지사의 탈당으로 자민련의 운명이 다해 가고 있다.

‘자민련’이란 정당은 아직 존재하고는 있지만 정치적인 의미는 없다. 충청권을 지역적 기반으로, 김종필씨를 정치적 언덕으로,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모방한 지역주의를 득표전략으로 삼아 창당된 자민련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다.

자민련이 사실상 뇌사상태에 빠진지는 이미 오래됐다. 충청권의 최대 관심사인 ‘신행정수도’국면에서 자민련이 보여준 한계를 반추해 보면 금세 안다.

자민련이 몇 명의 국회의원과 기초자치단체장을 당선시키기는 했으나 빠르게 다가오는 마지막 순간을 피할 수는 없어 보인다. JP가 “석양을 붉게 물들이고 싶다”며 노욕을 버리지 못했지만, 하늘과 민심은 벌써 자민련과 그를 버린 뒤였다.

시대의 기운을 거스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한창 물 좋을 때 방심의 도를 넘어 충청도민들을 만만하게 대한 결과가 몰락으로 나타나는 걸 어느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자민련은 충청도민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가질 자격이 없다. 영남권 인사의 ‘충청도 핫바지’ 발언을 증폭시켜 순박한 충청도 사람들을 ‘욱’하게 만드는 재주는 있었으되 충청도를 감동시키는데는 한없이 둔했다. 권력의 상층부에서 유희를 탐닉하는 욕심은 과했으되 충청도를 사랑하는 실천은 턱없이 모자랐다.

한때 충청도에선 녹색 깃발만 꽂아도 당선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기에 정치 지망생들은 양심과 소신은 땅 속에 묻어놓고 썩은 고기에 몰려드는 까마귀떼 같이 너도 나도 모여들었고, 또 당선되기도 했다. 이제 그들은 또 한 떼의 불나비가 되어 따뜻한 불빛을 찾아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숨만 쉰다고 사는 것이 아니다. 사는 방식이 여러 가지이듯, 죽는 것도 여러 방식이 있고 단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 죽을 수도 있다. JP나 자민련은 물론이고 충청권도 더는 죽는 수를 두지 말아야 한다.

조금 더 지켜봐야 알 수 있겠지만 자민련을 탈당하는 인사들이 충청권, 또는 중부권을 기반으로 하는 신당을 창당할 계획이라고 한다. 신당이야 창당요건만 갖추면 얼마든지 새로 만들 수 있기는 하나 자민련의 아류인 소지역주의 정당을 구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인적자원과 머릿속 생각, 정치 수준이 그대로이고 지역성 자극이라는 아날로그 시대의 수법까지 고스란히 물려받는 정당이라면 자민련 간판을 아무리 다른 이름으로 매일 바꿔 달아도 죽는 숫자만 자꾸 불릴 뿐이다.

현재의 정치구도에서 머물 곳을 찾지 못하는 민심이 의탁할 정당이 필요하다는 정치현실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오갈데 없는 무리들이 또다시 충청도를 정치적 포로로 잡을 요량이라면 아예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충청인들을 깔보지 말라. 그리고 이제는 자민련의 아픈 추억이 자민련을 사랑했던 사람들과 충청권, 또 이 나라 정치사에 의미있는 한 줄로 기록되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