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고 절규하던 김선일씨가 끝내 참혹하게 살해되고 말았다. 반인륜적 만행에 할 말을 잃는다. 그의 가족은 물론 우리 국민 모두에게 한없이 아픈 상처로 기억될 것이다.

누가 이 젊은이를 이토록 처참한 죽음에 이르게 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정부가 해야한다. 허약한 정부, 갈팡질팡 중심 못잡고 헤메는 정부,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모양새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김씨에 대한 이라크 테러범들의 학살은 대한민국에 대한 야만적 도전이다. 이제 한국은 새로운 형태의 국가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김씨의 죽음은 현재 이라크내의 혼란스런 상황 뿐 아니라 이라크를 둘러싼 국제 정치적 역학관계까지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제 사회의 외면 속에 강행된 미국의 이라크전과 이라크 내부의 광범위한 저항에 직면해 장기화되고 있는 미군의 이라크 점령에 맞물려 대규모 전투부대를 이라크 평화와 재건지원이라는 명분으로 파병키로 한 우리나라의 곤혹스러운 입장이 배경그림처럼 깔려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파병이라는 국가중대사를 앞둔 정부의 대비태세가 얼마나 허술한 것이었는지가 그대로 노출됐다. 사건 발생 후 제대로 된 정보나 접촉통로를 확보하지 못하고 허둥대다 기껏해야 아랍방송을 통해 테러범들의 선처에만 기대려고 한 정부의 행보는 낙제점이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 국민 사과도 유족과 국민들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테러단체와 협상에 나서면서도 납치에 따른 정보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납치는 훨씬 전에 이루어졌고 미국이 이같은 사실을 알고있으면서도 우리 정부에 통보해주지 않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서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테러집단과는 타협없다”는 정부의 입장이라면 김씨 석방을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은 무엇이었으며, 그 쪽에 어떤 조건을 제시했는가? 파병철회요구에 한 목숨이 걸려있는데도 “파병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정부의 즉각적인 대응발표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한편 이라크 추가파병을 결정한 우리 정부의 결정은 올바른 것인지 냉정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물론 이라크 파병이 단순히 전후 이라크의 재건과 평화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국익을 위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주장에 그 나라 국민이 동의해야 우리의 명분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파병의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국내에서조차 파병여론이 엇갈리고 있다.

반대 시위가 잇따르고 국회의원들도 ‘파병철회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마당에 이라크 전이 미국이 주도한 부도덕한 침략전쟁이라는 비난을 잠재우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 추가파병이 선량한 국민의 생명과 맞바꿀 만큼 물러설 수 없는 지고지선(至高至善)의 정책인가 하는 점이다. 김선일씨와 같은 아무 잘못도 없는 국민들이 테러의 표적이 되고 국익이라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희생된다면 이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나는 살고 싶다”는 김씨의 마지막 절규가 계속 귓전을 맴돈다. 누가 그를 죽였는가. 이건 정말 비극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