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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조 창인의 <가시고기>
책 익는 마을 원진호
2018년 03월 13일 (화) 11:42:00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줄거리
 1999년 서울 어느 한 종합병원. 서른 다섯의 아버지가 열 살 아들을 간호한다. 아들은 급성 백혈병. 1차 치료 후 재발하여 2차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했다. 그러나 결과는 관해 실패. 골수 이식이 유일한 길이었으나 조직항원접합성이 맞는 공여자를 찾지 못했다.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여행을 떠났다. 우연히 강원도 산 속에서 아들 삶의 마지막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골수 공여자를 찾게 되고 다시 병원 무균실로 입원하게 된다. 문제는 병원비. 아버지는 결국 자신의 신장을 팔 결심을 한다. 그 과정에 말기간암이 발견된다. 아버지는 치료를 포기하고  각막을 팔아 병원비를 마련한다. 아들은 엄마를 따라 프랑스로 떠나고 아버지는 아들의 행복을 빌며 죽음을 맞이한다.

■ 아버지는
 광부였다. 갱도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었다. 엄마는 집을 나갔다. 무능력한 아버지는 쥐약을 아들에게 먹이려 했다. 아들은 살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버렸다. 네 힘으로 살아라. 아버지는 이젠 힘이 없다. 고아원에서 컸고 독학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그는 나무처럼만 살자고 했다. ‘제 홀로 뿌리 내리는’ 나무처럼 ‘앙앙대지 않고 안으로 속살을 키워내는 나무처럼’말이다. 시인이며 번역가가 된 아들은 한 여자의 사랑을 얻었다. 아이가 생겼다. 아들은 아들을 자기처럼 살도록 않겠다고 결심했다.

■ 엄마는
 아버지의 시와 문학을 사랑했다. 집안의 반대로 결혼했다. 뭐 하나 부족하지 않게 남부럽지 않게 산 엄마다. 그러나 현실은 구차했다. 가난함도 그렇지만 자신의 삶을 살지 못 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남편과 아들은 그 녀에게 구속이었다. 남편에게 헤어지자고 하고 자신의 꿈인 그림을 위해서 새 남자와 프랑스로 떠났다. 뒤늦게 아들의 병을 알았다. 남편이 무능력하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아들이 조각한 것을 보고 그의 천재성을 알아 봤다. 프랑스로 데려가 체계적으로 키우고 싶었다. 아들이 무균실에 들어가면서 남편이 갑자기 양육권을 포기했다. 처음엔 의심했으나 모든 것이 선선히 진행되었다. 이유는 몰랐다. 어찌됐든 남편은 아들에게서 떨어져야 할 존재였다.  

■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하고 사랑했다. 아버지는 항상 자신의 의견을 먼저 물어 봤다.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혼내기만 했다. 아프고 난 후 아버지가 항상 옆에 있었다. 아들의 소원은 ‘아프지 않았으면, 아빠가 부자였으면, 엄마가 돌아와 용서를 빌었으면, 그리고 좋아하는 여자 친구를 매일 만났으면’이다. 강원도 사락골에서의 한 달간의 삶은 그에게 너무나도 큰 선물이었다. 병원에 있지 않고 아프지 않았던 그 시절. 아버지와 함께 했던 그 날들. 골수 이식을 위해 무균실 생활을 하게 되면서 아버지가 냉담해졌다. 엄마와 프랑스로 가란다. 난 싫다. 완치 후 아버지와 같이 그 동안 못 했던 것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러나 결국 떠난단다. 나는 앙탈을 부렸다. 아버지를 꼭 한 번 보게 해 달라고. 아버지는 끝까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아빠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아프지 말고 어른답게 씩씩하게 살라고 했다. 그렇게 아들은 프랑스로 떠났다.

■ 가시고기
 엄마 가시고기가 알을 낳고 떠나면, 아빠 가시고기가 알들을 지킨다. 자지도 먹지도 않으며 목숨걸고 지킨다. 알들이 부화하고 어느 정도 자라면 아빠를 떠나 제 갈 길로 떠난다. 아빠 가시고기는 돌 틈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 버린다.

■ 아버지의 소원
 ‘세상을 사랑하고, 또 세상으로부터 사랑받는 다움이가 되길 바란다.’ 그의 유고 시집에 담긴 소원 글이다.

■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사랑이다. 톨스토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문학작품으로 표현했다. 그는 시골 어느 이름 없는 기차역 대합실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비참한 세상에 대한 연민을 상징하는 그 다운 죽음이었다. 가시고기의 삶도 사랑이다. 사랑은 무엇일까? 이해이며 같이 함이다.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 나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랬다. 이 소설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의 삶도 그랬다. 나이 들며 눈물이 많아졌다. 아들 때문에 울고 아버지 때문에 울며 깊게 읽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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