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인 어른 
 이 사위네 오셔서 책을 읽으신다. 책장을 넘기며 한숨을 쉬시며 한마디 하신다. ‘왜 부모들은 자기 자식의 못난 것을 못 볼까?’ 그날 저녁 사위와 술 한잔을 하며 눈물을 훔치신다. “해준 것도 없고 먹이지도 못하고 맘만으로만 사랑했는데...” 여든이 가까운 나이의 장인 어른이 자식 네 명을 생각하며 회한에 찬 말씀을 하신다. 멋쩍어 하는 사위는 거실 탁자에 올려 있는 장인이 읽었다는 그 책을 넌지시 바라본다.

■ 줄거리
 60년대 서울 변두리에 어느 집에 할머니와 누나, 그리고 초등5학년 짜리 찬수가 세들어 살고 있다. 찬수는 봇짐 장사를 하는 할머니를 도와 외상값을 받으러 가고,  취직이 안 되는 누나를 위하여 구직 부탁을 하러 다니기도 한다. 자기 힘으로 중학교에 들어갈 돈을 벌기 위해 신문팔이,아이스께끼 장사를 하고, 이웃집 식모살이를 하는 불쌍한 아이를 구출해 다른 집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과정에 친구와 멱살잡이도 하고 이웃집 식구들에게 몰매를 맞기도 한다. 싸울 때는 악다구니 하지만 찬수는 인정과 의리가 있는 싸나이였다.

■ 장인 어른
 은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시작은 결손이었다. 애기였을 때 어른들이 잘못 다뤄 오른 어깨가 탈골이 되었는데 모르고 지나갔다. 어깨 관절에 뼈 힘이 없어져 근육을 키우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했단다. 그리고 자신을 병신이라고 놀리는 사람이 있으면 나이를 불문하고 대들어 싸웠다고 한다. 악다구니 했다.
 이북에서 내려온 가족은 대전에서 터를 잡고 장사를 했다. 당신은 일대에서 알아 주는 주먹이 되었다. 가족을 위해 힘을 쓴 건 당연지사. 누님을 희롱하는 남자들을  혼내 줬고, 이를 보고 혼 내는 누님에게 대들지 않았다.
 좋은 사람 만나 결혼을 하고 노가다 일을 시작했다. 공사판이 반은 사기라 십장 일을 하며 일꾼들의 노임은 꼬박 챙겨 줬어도 사장들에게 돈을 떼이기 일쑤였다. 그러면 몇 날 몇 개월을 집에 칩거하고 가슴앓이를 했단다. 부인이 미용실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아이들은 그럭저럭 커 나갔다. 큰 짐자전거에 아내와 네 아이를 태우고 유등천변에 가서 멱을 감기곤 했으나 돈을 풍족하게 아이들 손에 쥐어주지 못 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아내의 등은 굽었고 자주 아프게 되었다. 당신이 아내를 챙겨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자식들은 장성하여 제각기 짝을 찾아 품을 떠났지만 못 해 준 것이 많아 맘이 무거워진다. 특히 큰 아들 언청이 수술을 늦게 해 줘 약간의 장애가 남게 한 것을 못 내 속상해 한다.
 오늘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당신의 젊은 시절을 다녀 왔으리라. 그리고 눈가에 물기가 스미는 술잔을 들이키는 것이리라.

■ 주인공 찬수
 는 봇집 장사를 하시는 할머니와 취직이 안 되는 누나를 위해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웃집 불쌍한 식모 아이를 위해 발 벗고 나서기도 했다. 의지와 의리가 있는 행동이었으나 현실은 구적거렸다. 나쁜 사람, 좋은 사람 할 것 없이 지지고 볶고 하는 삶이 우리의 60년대에 있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한 결손과 가난한 나라의 결핍이 우리의 삶을 그렇게 만들었다.
 장인 어른의 삶도 그러했을 것이다. 본인이야 삶이 구적거렸기에 회한이 서렸을 것이지만, 사위는 장인이 의리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잘 살았다. 찬수. 잘 사셨다. 장인 어른.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사람다운 것이다. 의지를 가지고 의리있게 사는 것.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믿고 싶다.

■ 손 창섭 작가
 는 1922년생이다. 평양이 고향이다. 1949년에 등단하여 <얄궂은 비>,<혈서>,<잉여인간>등의 소설작품을 썼다. 그는 ‘겨레의 기대와 희망은 어린이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하면서 어린이소설도 많이 남겼다. 지금은 일본에 살고 계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