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서언니, 만화책 그만 보고 나랑 놀자, 응? 나 심심하단 말야”
때는 6년 전 이맘 때 쯤, 엄마들이 바삐 움직이는 명절, 추석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로 하루 전 날이라 집에는 아직 친척들이 모이지 않았었다.
내가 한참 재미있게 만화책을 읽고 있었을 때, 내 옆에서는 두 명의 동생들 중 막내인 윤민이가 같이 놀자며 보채고 있었다.
“싫어! 언니는 만화책 읽을 거야”
나는 징징대는 윤민이에게 버럭 화를 내버렸다. 금새 풀이 죽은 윤민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방에 들어갔다.
‘조금 심했나?’하는 생각은 살짝 들었지만 별로 크게 여기진 않았다.
다시 만화책을 읽고 있는데, 방에서 윤민이가 나왔다. 나는 사과를 하려 했으나 내 마음과는 다르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방에서 나온 윤민이는 부엌에서 송편을 만드시고 계신 할머니 곁으로 갔다. 할머니께서는 곁에 있는 윤민이를 알아채시고 나를 부르셨다.
“윤서야, 부엌은 위험하니 윤민이 좀 데리고 가서 놀아줘라. 윤민이가 많이 심심한 모양이다.”
나는 할머니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책을 읽었다 .윤민이에게 아까 괜히 화를 낸 게 미안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놀아주기에는 귀찮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윤민이는 할머니 뒤를 계속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귀찮게 했다. 바로 그 때, 송편을 찌려고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팔팔 끓는 뜨거운 물을 할머니께서 옮기시려는 찰나, 윤민이가 할머니를 실수로 툭 치고 말았다.
“촤악~” 뜨거운 물이 여리고 여린 세 살배기의 온 몸에 쏟아지고 말았다.
내가 처음부터 놀아달라는 윤민이의 말을 들어주고 함께 놀았다면, 아니 내가 윤민이에게 큰소리를 치며 화내지만 않았어도 후회가 덜했을 것이다.
‘이 나쁜 언니, 동생 하나를 못 놀아줘서 몸의 상처와 마음의 상처를 같이 입히게 하다니……. 이 나쁜 언니야, 남보다도 못한 몹쓸 언니야.’ 스스로에게 실망을 하며 자꾸만 생각했다. 그 순간, 그 날 만큼은 정말 못난 언니였다.
서서히 양쪽 볼에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러고는 멈출 새도 없이 주르륵 흘러 내려갔다.
그 때는 뜨겁고 끔찍한 그 고통에 울어 제끼는 윤민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을 뿐더러, 해 줄 용기조차 아예 없었다. 불과 몇 십분 전까지만 해도 방긋방긋 웃으며 ‘언니, 언니’하고 부르던 작고 귀여운 막내 윤민이가 지금은 나라는 나쁜 언니 때문에 울부짖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 아빠,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윤민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셨다. 덩그러니 집에 남은 나와 둘째 윤진이는 창문을 바라보며 엉엉 울고 있었다. 자고 있어서 윤민이가 화상을 입은 것만 알고 있는 윤진이는 다 자신 때문이라며 자기 자신을 나무랐다.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윤진이에게 미안해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한참을 울다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는데, 집에는 엄마와 아빠, 할머니께서만 와 계셨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윤민이랑 할아버지는 어디에 있어요? 윤민이는 괜찮은 거죠?”
“윤민이 병원에 입원했어. 꽤 심각해서 당분간은 윤민이가 병원에서 지내야 한 대. 할아버지께서 지금 윤민이 돌보고 계셔, 그나저나 내일 추석이라 세 자매 같이 입힌다고 한복 샀는데, 어쩌지…….”
쿵~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듯 했다.
입원이라니, 심각하다니……. 마치 윤민이를 다시는 떳떳하게 못 볼 만큼 미안했다.
그러면서도 윤민이에게 사과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부모님을 보채 윤민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았다.
윤민이의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윤민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빛나도록 환하게 웃었다. 나는 또 윤민이를 보자마자 툭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그 어린게 얼마나 아팠을까.
보통 어른도 참기 힘든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고 윤민이에게 정말 말로 표현 못할 만큼 미안하면서도 잘 참고 견뎌 준 윤민이가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그렇게 다음 날, 추석 당일이 되었다.
옷장에 걸어 놓은 윤민이의 한복을 보고 눈물을 터뜨렸다. 지금 쯤 내 곁에서 쫑알 댈 윤민이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컸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때의 기억은 너무나도 생생하다. 벌써 6년이 지난 지금은 건강하게 잘 자라 준 윤민이가 너무 기특하다. 항상 옆에서 조잘대는 살짝 시끄러운 막내 윤민이지만, 내가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동생 윤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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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5.2 목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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