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바로 아우가 어려운 서울 살림을 하고 있었을 때 제수씨는 첫 아기를 가졌었다.
나는 제수씨와 아우를 불러 앉혀놓고, 이쯤 시골에 내려가 부모님을 모시고 농사를 지으면 어떻겠느냐고 물으니 별다른 이견과 저항이 없이 내 말에 아우 내외는 순순히 따라 주었다.
아우 내외는 고향으로 내려가 아들과 딸 남매를 낳고 장남인 나를 대신하여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고 있었다.
더욱이 제수씨는 여든이 넘으신 시부모님을 친 부모님처럼 모시어 그 소문이 차츰 널리 알려져 군수ㆍ시장ㆍ도지사ㆍ보건사회부장관 표창에 이어 김영삼 정권에 청와대까지 초빙되어 효부 노릇을 톡톡히 해 주었다.
제수씨는 시부모님의 장례에 아들, 딸보다도 더 애통해 하며 두 분을 모두 영원한 안식처로 잘 모셔 주었다.조금은 건너뛰는 말이 되겠지만, 아우의 큰아들 내 조카는 지방대학교 이공계에 이년쯤 다니다가 군에 입대하여 군종(軍宗)에서 군 생활을 마치고 제대했다. 큰조카는 군 생활에서 어떤 심경의 변화가 왔는지, 휴학한 대학교에 복학하기를 포기하고 다시 대학교에 도전하겠다고 조건부로 부모님을 설득하여 시험공부하기에 우리 집으로 거처를 옮겨오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가고 겨울에 접어들면서 대학입학 수능고사를 치르고 본격적으로 대학입학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큰조카는 수능고사를 본 후로 내 둘째 딸이 애지중지하는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 보기도 하고, 교회의 성가대에서 찬송가를 부르듯 어느 때는 테너로 어느 때는 바리톤으로 어느 때는 알토로 내 귀가 워낙 음악에 문외한이어서 어느 때는 소프라노로 종잡을 수 없는 음정을 내어 큰조카 녀석이 과연 ‘성악과’에 합격할 수 있을 것인가 심히 걱정이 아니라 불가능할 것이라고 나는 팔ㆍ구할은 단정하고 있었다. 이유는 얼마든지 댈 수 있었다. 다섯 살도 되지 않은 작은 딸을 순전히 아내의 보상심리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게 하여 스물일곱ㆍ여덟해 동안 피아노 앞을 떠나지 못하게 한 전력으로 보아 언감생심(焉敢生心), 큰조카는 성악과에 합격할 수는 전혀 없는 것이었다.
성악도 피아노와 마찬가지라고 나는 단정을 해놓은 터였다. 물론 성악은 천부의 타고난 음량과 음색과 바이브레이션이 있어 건반을 두드리는 피아노와는 견주기 어려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유치원ㆍ초등학교 저학년 아니면 변성기를 지난 소년기로부터 훌륭한 교수님과 전문 음악가로부터 지도를 받아야 할 수험생이 연목구어격(緣木求魚格)으로 억지를 쓰는 것이나 아닌지 나는 마음 속으로 두려움조차 갖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큰아버지인 나는 손에 깍지를 끼고 큰조카가 하는 모습만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큰조카는 대학수학능력검사 점수가 나오니 대학교 입학원서를 작성하여 대학교에 제출하는 것이었다. 물론 대학교에 서열이 매겨진 것은 아니지만 큰조카는 우리들이 이른바 명문이라고 알고 있는 대학교를 선택하여 서슴없이 입학원서를 내는 것이었다.
내 작은 딸, 사촌 누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마지막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있었다.
제 일차 사립 명문의 실기시험이 다가왔다. 사립명문은 수험생답게 큰조카를 정장으로 꾸미게 했다. 큰조카는 커튼이 드리운 교수님 앞에서 그동안 쌓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다음은 국립대학교답게 입성은 자유로이 놓아두고 있었다. 평상시대로 큰조카는 청바지에 와이셔츠 바람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교수님 앞에서 자기가 닦은 실력을 고스란히 발휘하고 있었다. 그런데 외모를 번듯하게 정장을 하고 시험을 본 사립 명문은 떨어지고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응시한 국립대학교에 당당히 합격한 이 불가해한 큰조카는 아직도 나에게 미해결의 신선한 한 마디(節)일 뿐이다.
우편번호 33436 충남 보령시 신설 3길 11, 1층(동대동, 모스트센터) | Tel: 041)936-0005 | Fax:041)935-1356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연중
Copyright ⓒ 2009 보령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jong8610@hanmail.net
2024.5.2 목 09:38 
webmaster@charm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