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나스(1906~1995)는 50여 년 동안 거의 무명의 철학자로 살았지만 생애 후반 유럽 지성계에 큰 영향력을 끼친 철학자이다. 1974년 『문학과 지성』 봄호에 손봉호가 「레비나스의 철학-‘다른 이’의 얼굴」이라는 글을 써서 소개했는데, 이는 레비나스를 우리나라에 소개한 최초의 글이다. 『전체성과 무한』(1961)은 레비나스를 세계적인 철학자의 반열에 올려준 책이고, 『타인의 얼굴』은 타인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사유의 관점에서 주체를 새롭게 해석한 혁명적인 철학으로 유명한 책이다.

레비나스는 리투아니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히브리어 성경과 도스토예프스키, 푸슈킨을 읽으며 철학적 관심이 형성되었다. 레비나스는 후설과 하이데거를 철학적 배경으로 해서 ‘우리의 존재 양식’과 ‘세계 내에 있는 존재’에 관심이 있었다. 후설의 현상학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강의를 통해 후설과 하이데거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 뒤 하이데거 철학과 끊임없이 대결하게 된다. 레비나스의 철학은 ‘주체성의 변호’에 있다. 레비나스는 전쟁의 폭력 속에서 서양 철학을 전체주의적으로 보았고, 인간의 인격을 하나의 체계에 종속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1970~80년대에 주체 문제가 현대 유럽 철학의 중심주제 가운데 하나로 등장한다. 하버마스는 주체 문제를 다룬 계보를 작성하고 의사소통적 주체 이론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1966), 자크 데리다의 『인간의 종말』(1968)에는 주체의 죽음에 관해 논의를 하고 있다.

독일철학은 유일하게 주체의 절대화를 두 차례나 경험하는데, 하나는 칸트로부터  시작하여 칸트 극복을 기치로 내 걸었던 피히테, 셸링, 헤겔의 독일 고전철학으로 이어지고, 또 하나는 자연주의와 역사주의를 비판하면서 초월론적 주체를 내세운 후설을 통해서이다.  니체는 “주체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 첨가된 것, 그 뒤에 숨겨진 것”이라고 하면서 단호하게 “주체는 허구다”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데카르트의 인식 주체를 부인하며 행위 주체도 부인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이미 많은 것을 전제한다. 칸트 철학의 핵심적 요소는 피히테와 셸링에 의해 계승되는데, 이들은 자아 문제를 철학적 주제로 삼는다. 독일관념론 전통이 주체를 절대화하는 데는 스피노자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