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머니가 우리 집 주소를 알려달라고 성화입니다. 별일은 없느냐고 안부도 묻습니다. 이번에는 우리 집 주소를 꼭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각오인 듯합니다. 주소를 알게 되면 쳐들어가서 어떻게 할까 봐 안 일러주느냐고도 합니다. 뭘 보낼 생각인 것 같습니다. 보령시 남포면에 살고 있는 육십 대 중반의 한 아주머니의 전화 내용입니다.

이 아주머니의 남편은 육 년 전부터 대장암으로 투병하고 있습니다. 나는 고향 지인의 부탁으로 이분들의 병원 입원 등을 돕거나 가끔 전화를 걸어서 건강 상태를 묻고 함께 걱정을 하기도 하고 희망적인 얘기를 나누곤 합니다. 아주머니는 내가 친정 오빠보다도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며 고맙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내가 아주머니께 전화를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화를 하려던 참이었다고 하면서 남편의 건강 얘기를 들려줍니다. MRI 촬영을 하였는데 골반에까지 전이가 되었고 치료를 해도 좋아지기 어렵겠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앞이 깜깜하다며 뭐 좋은 방도가 없겠냐고 묻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검사 결과를 보고 한 말이라면 믿는 수밖에 없겠다 생각하면서도 선생님 말씀에 따르라고는 말을 못합니다. 마음이 아프고 미안할 뿐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암 치료에 성공한 분들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며 희망을 갖고 용기를 내기도 했었는데 아쉬움이 가슴을 저밉니다.

경제적으로도 크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입니다. 재산이라고는 논 육백 평에 밭 삼백 평이 전부입니다. 그것도 외진 산골에 있습니다. 밭 한쪽에는 투병하는 남편에게 좋을 것이란 말을 듣고 빨간 고구마를 심었다고 합니다. 속살이 빨갛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딸 넷과 아들 하나를 키워왔습니다. 퍽이나 어려웠을 겁니다. 우리 남편 목숨은 한 목숨이 아니라고 합니다. 온 가족이 남편과 함께 투병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살려내야 된다는 겁니다. 애걸을 합니다. 내가 이분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함께 걱정하는 것뿐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희망적인 얘기도 끝을 다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아주머니는 지난 육 년간의 남편 목숨 살려내기에 기력을 다 잃었습니다. 몸은 팔십 대 할머니처럼 쇠잔해졌지만 남편 살려내는 데 희망적인 무언가가 있다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이 솟구치며 의욕이 넘쳐납니다.

내가 아주머니의 남편을 구할 수 있는 길로 최선을 다해보자고 마음먹은 지도 어언 오 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의 아주머니의 삶이 남편의 암투병과 한 치의 여분도 없이 겹쳐 있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젠 희망도 사그라졌을까. 힘 없이 호미를 잡고 고구마를 캐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투병하는  남편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믿고 정성껏 심고 가꿔왔던 빨간 고구마를 캐는 아주머니에겐 무심한 세상이 야속하고 한스러울 뿐입니다. 남들은 모두가 농약을 치는데도 아주머니는 남편이 먹을 것이라서 무농약 재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벌레도 먹지 않고 실해서 맛이라도 보라고 보내준다는 겁니다.

가슴이 무너지는 소식을 들은 건 안타깝게도 정성껏 가꿔온 빨간 고구마를 수확할 즈음입니다. 빨간 고구마가 희망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수확을 기다리던 날들은 야속하리만큼 길게 느껴졌을 겁니다. 나도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까지 받은 경험이 있는 터라서 이 부부의 아픈 심정이 느껴집니다. 암 판정을 받고 난 후 주위의 권유로 홍삼을 입에 달고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으면서도 그래도 희망이라 믿고 싶었었지요. 부인의 애틋한 정성이 배어 있을 빨간 고구마를 남편분이 맘껏 드셔보기라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늦가을 어느 날 라면 상자 하나가 집으로 배달되었습니다. 남포 아주머니가 보내온 겁니다. 빨간 고구마가 들어 있습니다. 겉모양이나 색깔은 여느 고구마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주머니가 저를 많이 생각해서 보내준 것이지만 맛보기가 미안합니다. 더욱이 맛을 즐기며 먹을 수는 없습니다. 남편분께 가야 할 정성이기 때문입니다. 상자 한켠에는 웬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들어 있습니다. 현미 찹쌀입니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터라서 농산물은 잘 알아봅니다. 벼 낟알 한 톨 한 톨을 기계가 아닌 손으로 일일이 깐 듯합니다. 쌀알 크기가 고르지 않은 걸 보니 벼농사 관리는 잘할 수 없었나 봅니다. 힘들었을 삶이 묻어나 있음을 봅니다.

찐 고구마의 속살은 적갈색입니다. 남편이 잘 치료되기만을 바라는 아주머니의 타는 가슴속을 보는 듯합니다. 아주머니는 내가 제약회사 사장이라는 이유로 더 큰 기대를 가졌을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도와줄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작은 편리나 위로 정도에 지나지 않았기에 미안함이 큽니다. 그런데 그 마저도 이 부부에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나 봅니다. 이분들에게 세상이 그만큼 메마르게 느껴졌나 보다 생각하니 씁쓸해지기까지 합니다.  

우리나라는 전 국민 의료보험 가입국입니다. 그렇지만 암과 같은 질병의 경우 아직도 높은 의료 부담 때문에 가정 경제가 어렵게 되고 그로 인해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아주머니는 1회 치료비가 사백만 원 하는 치료법이 있다고 들었다면서 나에게 알아봐주길 원합니다. 그리고 내가 좋다고 하면 치료받겠다고 합니다. 육백 평뿐인 논을 팔아서 치료비를 댈 생각이랍니다. 모두들 장성은 했다고 하지만 딸린 자식이 다섯입니다. 아주머니, 가슴 아프더라도 논일랑 팔지 말고 지키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할 수 있는 이상으로 정성을 다했으니 말입니다. 언젠가 녹차를 끓이면서 이 차는 남편이 마셔도 괜찮겠냐고 묻던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고구마의 속살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내 속도 빨갛게 타들어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