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몇 권의 산문집을 손에 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사실 저는 평소에 산문집보다소설을 더 많이 읽는 편입니다.
작품의 대부분이 삶에 관한 낭만적인 부분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지고 감상적인 언어만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뭔가에 푹 빠져 일상의 단조로움을 깨는 방편으로 소설을 손에 들게 되는 필연적 법칙에 지배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끔 유명작가나 정치인, 사업가, 연예인이 산문집을 내는 것을 보면 출판사의 상업적 의도도 일조를 하겠지만 좀 심한 표현을 쓰자면, 그런 유명인들은 마치 독자들이 그들에 대한 궁금증이 주는 ‘무언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함 이거나 아니면 독자들이 그들의 시시콜콜한 일상과 삶을 궁금해 할 것을 걱정이라도 하는 양 적절한 시기를 골라서 산문집을 내는 것 같습니다.
정치인은 선거를 앞에 두고, 사업가는 사업이 성공했을 때, 연예인은 인기가 절정에 오르거나 아니면 연예계에 다시 복귀 할 때 책을 내는 것을 보기도 하는데 그래서 이런 산문집들의 내용은 ‘나도 이렇게 어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라거나 대단한 일을 본인이 해냈거나 할 수 있다고 하는 식의 자기 연민이나 자랑을 늘어놓기 일수 인 경우도 더러 보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산문집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있음에도 굳이 산문집을 손에 들었는가? 그것은 순전히 ‘우연’이라는 나의 선입견을 뛰어넘게 해주는 도깨비 같은 삶의 벗이 장난을 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우연의 도깨비는 라디오 방송을 타고 나타났습니다.
몇 해 전, 모 라디오 방송에서 강화도 시인으로 알려진 함민복 시인의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를 진행자가 소개하고 책의 일부분을 낭독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 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
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시 전문)

함민복 시인의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는 하루하루를 싱겁게 살고 있던 나에게 적절한 간을 맞춰준 천일염처럼 나의 정신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함민복 시인의 또 다른 산문집을 손에 들게 했습니다.
산문집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는 2007년 4월부터 2008년 2월까지 한국일보 칼럼 '삶과 문화'와?2008년 12월부터 2009년 5월까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연재했던 글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책에는 시의 모태가 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가난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어린 시절의 추억, 인간과 자연의 조화, 팍팍한 현실에 대한 쓴소리 등 여러 가지의 단상들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며 쓴 '산소 코뚜레'는 읽는 이의 콧잔등을 건드립니다. 산소 호흡기를 달고 투병 중이던 어머니의 병실을 지키며 '어머니, 소가 되셨나요. 왜 코뚜레를 하고 계세요? 어머니 코끼리가 되셨나요. 왜 코에서 나온 호스로 미음을 드시죠? 어머니, 소처럼 벌떡 일어나세요.' 라고 어린애처럼 외치는 시인의 음성이 눈시울을 적십니다.
자주 찾는 강화도 전등사 산책길에 느낀 단상인 '전등사 가는 길'에서 그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의 아름다움을 웅변합니다. "꿩이 내달은 길은 고라니 길이 될 수 있고 고라니 길은 사람 길이 될 수 있다. 사람이 걸어 다니던 길은 큰 차도가 될 수도 있다. 길끼리 만나지 않는 길은 존재할 수 없다. 길 중에 섬인 길은 없다.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수업료를 내지 못해 수업을 빼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물고기를 잡던 중학교 시절 추억의 한 토막은 아련한 슬픔의 여운을 남기고 "그땐 물고기를 잡아 꿰미에 끼우지 않고 다 살려주었다. 물고기 무게를 손바닥으로 저울질해보다 까만 붕어 눈동자를 보고 잠시 슬퍼지기도 했으나 물고기를 잡고 있는 순간만큼은 아무 걱정도 들지 않았다." 어린 시절 가난한 아이의 자존심이 다치지 않게 잡아온 물고기를?돼지고기와 말없이 바꿔주던 옆집 정육점 주인, 굴렁쇠를 훔치러 간 아이와 친구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점잖게 타일러주던 엿장수 이야기 등 추억 어린 글은 나의 회색 빛 기억의 서랍을 열어보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삶과 예술이 일치하는 삶을 사는 함민복 시인에게 깊은 존경과 찬사를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