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발이 호강하는 색상과 질감의 계절이다. 마치 밥 먹는 일처럼 하늘과 산이 내 가까이 있음을, 나무들과 가을의 꽃들이 그냥 내 것인 것 마냥 친숙해져버리는 요즘이다. 오늘도 어둠이 커튼 속으로 내리고 난 기꺼이 그 위에 하루의 날개를 접는다. 꿈을 좇아 하루를 다 써버린 열정의 얼굴이 거울에 비쳐졌으면 좋겠다.  변화의 화운데이션 위에 꿈의 아이새도우 빛깔과 열정의 하이라이트된 모습으로 나른하게 온 몸을 기어 다니는 피로에 자리를 내맡겨본다.

서늘하고 청명한 지리산 노고단 자락의 길-뱀이 또아리 튼 그 S 라인 길-을 그리워하는 내가 저만치 웅크리고 있다. 작년에는 그 굽이굽이 흐르는 길에 매료되어 세 번을 돌아보기도 했었다.

이제는 올 한 해의 삶을 부드러운 사색의 곡선 위에서 되짚어보고 반성하는 여유의 계절이다. 얼마 전 원산도 우리 원의중학교 학생들은 영어 뮤지컬을 축제에 올렸다. 한 달에 한번 원산도를 찾아 안무와 노래, 대사의 교육을 흔쾌히 맡아 주고 여름방학 중에는 청소년극단 학생들과 2박 3일의 뮤지컬 캠프로 우리 모두를 웃음 삼매경에 빠지게 해준 광주시 연극협회 청석 에듀씨어터 회원들의 손길이 있었고 또한 자매결연 대학교 영어동아리 학생들이 형처럼, 언니처럼 매달 찾아와 우리 아이들의 맘을 어루만지고 영어대본을 공부하도록 도와주면서 함께 시간을 공유했던 고마운 교육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함께 사는 꿈을 서로 나눌 수 있었던-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내가 자라왔고 학생들을 가르쳐왔던, 내 머릿속에 확연히 자리잡은 서울과 경기도의 또래 학생들의 모습은 반응이 빠르고 쉽게 흥미를 느꼈다가 그냥 어느 순간 거품처럼 사그러져 버리는, 고단수의 흥미유지 전략을 짜내지 않으면 쉽게 지쳐버리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원의중학교 학생들은 기대와 긴장이 교차되는 눈망울로 진득하게 진실하게 가르침을 체득하며 따라주었다.  삶의 S 라인이란 과정을 소중히 여기고 삶을 음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방향감각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正道를 걸어가는 길이다. 또한 천천히 서두르는 삶의 역설을 이야기 하는 것이 S 라인의 부드러운 여유이다.  처음으로 시도해본 영어뮤지컬이 우리학교 학생들에게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며 잡아당기는 배려와 존중을 체득할 수 있었던 기회였으리라. 

삶의 S 라인이 우리가 바라는 꿈을 마침내 실상으로 이어주는 인내의 길이라면 우리 아이들에게 그 연료이자 원동력이 될 수 있는 무서운 실행력인 V 라인의 길도 걷게 해주리라.
철저히 삶과 관계의 뜨거운 불을 지피며 아집과 편견이라는 둥둥 뜬 기름을 수시로 걷어 내면서 온 이웃과 세상이 너희들과 끈끈하게 진한 육수로 달여지는 일체감을 맛보기까지, 소유하고픈 욕망이 아닌 존재 하나하나에 감사와 긍정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어제의 우리를 뛰어넘기 위해 억척같은 추진력으로 어깨동무하며 함께 달려 나아가는 V 라인의 인생길에 이미 우리는 초대받은 행복한 주자들이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