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연탄 한 장’에서도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활활 타오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아파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다 타고 남은 연탄재일망정 함부로 발로 차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시인 안도현. 그 누구든 그 무엇이든 일단 툭툭 건드려 보고 만만하다 싶으면 무작정 까고 보는, 동네 꼬맹이들조차 재미삼아 발로 차버리던 개오줌 냄새 솔솔 나는 연탄재를 통해 자신을 반성하며 안타까워하던 한 사람 안도현.

 그에게는 뻐꾸기의 ‘탁란’처럼 자신을 세상에 빚진 자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 마음과 그리고 그 빚을 빨리 갚지 못함에 대한 조바심과 죄스러움이 있다. 또 그에게는 행복했던 그리움이 있고, 그 그리움을 발굴하여 모두가 행복해지는 나라가 있으며, 약한 자를 아끼고 배려하는 대인의 심성이 있으며, 철없이 어린 이슬방울들일 망정 세상을 움직이는 큰 강물이 될 것이라는 소망이 있으며, 남에게 입힌 작은 상처마저도 용서를 빌지 못한 것에 대한 쓰라린 아픔이 있으며, 비록 크게 소리내어 울지는 못하지만 입 틀어막고 숨죽이며 사무치게 울어대는 ‘붉은 눈’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여 수업시간에 종종 인용하는 안도현의 시를 소개해본다.

          겨울 강가에서

   어린 눈발들이,  다른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도현 시집 『그리운 여우』 중)

 서정을 들고 와서 서정을 매만지다 그만 서정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고심하던 서정시인 안도현. 안도현의 시를 읽으면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행복해 하며 아련한 추억으로 이끌린다. 요즘 그가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린다. 그의 진보적인 정치성향으로 말미암아 이 땅이 다시금 천재적인 서정시인 한 사람을 내동댕이칠 것만 같아서 걱정이다.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것에 대하여 적잖은 불만이 쌓여있다. 무엇을 해석하고 덧붙이고 설명해줘야하는 안타까운 직업이 선생이다. ‘선생똥은 개도 안먹는다' 는 우스갯말이 있다. 그 만큼 속이 다 타들어간다는 말이다. 그냥 그대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손대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공감하거나 아님 말거나. 독자의 몫이니까. 그는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기회가 된다면
    가르치는 직업을 버리고
    오른팔 쭉 뻗어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
    너와 눈을 맞추고
    다시 저 멀리 넌지시 바라보는
    가리키는 직업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