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을 며칠 앞두었던 지난 4일, 보령시인력개발센터(관장 이무자) 2층 강의실에서는 몇몇 학생들이 선생님이 불러주는 단어를 연필로 받아 쓰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알듯 말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기도 하고, 가끔은 옆자리를 힐끔거리며 ‘내가 맞어’ 하는 모습과 선생님에게 다시 한 번 물어보며 시간을 끌려는 학생도 보였다. 채점 시간이 되자 ‘선생님 저 다 맞았어요!’ ‘점 하나를 잘못 찍었네!’하는 마치 갓 입학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처음으로 한글 받아쓰기를 하는 것처럼 재미있는 모습들이었다.
이 곳의 모습은 초등학교 학생들의 수업장면이 아니다.
얼굴 가득 세월의 주름이 가득하고, 하얀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들의 수업장면이다.
보령시인력개발센터에서는 지난 해 11월부터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무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한글교실을 운영, 인기를 끌고 있다.
한글교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씩 계속되고 있으며, 전옥란(63세)반장을 비롯해 황의정, 박금란, 이영희, 유송자, 유영균, 김수희, 김동예, 이영숙, 김정순씨 등 50대 주부에서부터 70대 할머니까지 현재 1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를 함께 하고 있다.
“평생 글을 모르고 살았는데, 이제 배워서 무엇하나 하는 생각에 처음에는 선뜻 내키지 않았어요. 그런데 둘째 아들이 ‘어머니 오늘 배우다 내일 돌아가시더라도 공부하세요’라고 하면서, 학용품일체를 사다 주더군요. 그리고 아침마다 공부하는 곳까지 태워다 줍니다. 그 덕분에 세상이 밝아졌습니다.
재미도 있구요. 또 제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젊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었다고 하면서 공부를 시작한 사람도 있더군요.”
이제 읽기는 물론 받아쓰기에도 거의 100점을 맞을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가장 연장자인 황의정할머니(73세, 남포면 옥서리)의 말이다.
“어제 은행가서 처음으로 전표를 써서 혼자 돈을 찾았어요. 그 동안은 은행직원에게 부탁했었죠. 그리고, 이제 내가 타야 하는 버스가 어떤 버스인지도 혼자 볼 수 있고 간판도 볼 수 있고 참 좋아요.”젊은 할머니라는 이영희(59세)씨의 말이다.
이날 한글교실 학생들은 1학년 읽기 교과서를 다 떼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2학년 교과서를 공부할 계획이다. 또한 앞으로 6학년 교과서까지 꾸준히 공부를 계속하려 한다는 계획을 전하기도 했다.
“이곳에 오는 시간이 제일 즐거울 정도로 공부가 재미있어요. 이제 농사철이기 때문에 공부를 쉬어야 한다는 것이 조금 아쉽죠. 하지만 꾸준히 공부들 한다고 하십니다.”전옥란 반장의 말이다.
한글교실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세상이 밝아지고, 남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버스도 혼자 탈 수 있고, 은행에서 돈도 혼자 찾을 수 있어 좋다는 할머니 학생들.
할머니 학생들의 한글지도는 임남순 전 대천초등학교 교장과 김정원 전 대천문화원 사무국장이 맡고 있다.
또한 이들 학생들은 ‘자존심이 상해서’ ‘쑥스러워서’ ‘그럭저럭 살지’하는 마음으로 배움을 포기하고 있는 무학자들이 있다면 함께 공부하며 즐거움을 만끽하라고 부탁하며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보령인력개발센터에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이순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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