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의 모습, 얼굴은 인권보호 차원에서 생략.

‘긴급 출동 SOS 24’라는, 지금은 종영된 프로그램을 기억 한다.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현장.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방송 카메라를 들이대던 프로그램으로 TV 방송 후 인터넷이 떠들썩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칼바람이 매섭던 지난 2월 중순에 파출소에 걸려온 전화 한통으로 알게 된 한 노인을 보살피며, 긴급 출동 SOS 24라는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사회적 약자, 어려운 이웃들의 모습이 겹쳐진 것은 내 주변에 TV에서나 소개될 만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기 때문이었을 거다.

추운 겨울, 파출소에 접수된 신고 전화
충남 보령시 청소면 어느 마을 야산을 배회하는 노인이 있다고 한다. 폐가나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며 동네를 전전하는 데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고 있어 겨울철 동사 등 안전사고 등에 쉽게 노출되어 위험하니 확인해달라는 신고.

현장 출동
신고자가 알려준 마을에 도착해 노인을 찾아보려고 인근을 샅샅이 살펴 보았으나 찾지 못해 탐문에 들어갔다. 마을 노인회관을 찾으니 “ 3-4년 전부터 노인 한분이 마을에 들어와 간혹 동네 일을 도와주고는 과일이나 빵 등을 얻어가 산속 등지를 전전하며 살고 있다”는 주민들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다시 수색
이 추운 날씨에 집도 없이 살수 있을까? 다시 한번 주변을 한참 살피던 중 남루한 옷차림으로 급히 산을 향하는 노인 한분을 발견. ‘아, 저 사람이구나’하는 본능적 직감. 급히 뒤를 따랐는데... 뒤를 쫓는 경찰관을 경계하는 듯 빠른 발걸음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숨을 몰아쉰 추격(?) 끝에 노인을 만났다.

야인(野人) ?
남루한 옷차림에 왜소한 체격, 제대로 씻지도 않은 초췌한 인상에 수염으로 더부룩한 얼굴, 무슨 이유에서인지 순간 야인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자꾸 자리를 뜨려는 노인을 붙들고 이름을 묻자 한참만에 00라고만 말한다. 다시 나이를 묻자 “난 20살이고 저 산이 내집이야” 라고 말하고는 갑자기 또 달아나기 시작했다.
자신이 들고 가던 까만 봉지(과일 몇 개와 물이 담겨져 있는)를 내팽긴 채 달아나는 노인. 나는 그 봉지를 주워들고 다시 추격에 나섰다. 이 노인... 체력이 장난이 아니다. 다시 마주친 노인에게 일단 비닐봉지를 손에 쥐어주고서 다시 이것 저것을 물어보았다. 자신과 형의 이름만 말하고 엉뚱한 대답만 늘어놓는 것으로 보아 정신지체 증세가 있는 듯. 일단 노인을 노인회관으로 모시고 와 동네 주민을 상대로 다시 탐문했다. 이 노인은 도대체 누구지??

▲ 주포파출소 직원들의 모습. 모든 직원들이 순찰시 노인이 있는 마을을 확인하며 병원 입소까지 노인을 보살폈다 (우측 앞출 첫 번째가 한현남 경관)

노인의 정체
3-4명의 이장님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노인의 신상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노인의 이름과 수십년전 보령 청소쪽에 거주한 사실, 인근 홍성군에 살고 있는 형의 집에 살았으나 가출을 한 것 같고, 정신제체 증세와 특별히 남에게 해를 끼칠 만한 인물은 못된다는 됨됨이까지...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지, 노인은 다시 산으로 도망갔다. 또 따라나섰다가는 자칫 깊은 산속으로 숨던지 다른 곳으로 가버릴 것 같아 일단, 파출소로 철수해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장님께서도 다시 경찰이 올 때까지 마을 차원에서 특별한 관심을 갖고 노인을 지켜봐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산을 떠나 병원으로 간 노인
다음 날 출근해 수소문 한 끝에 노인의 형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정신지체 동생과 함게 살려고 집에 데려다 놓으면 도망가고, 또 도망가고 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며 빠른 시일내 조치하겠다”는 답변을 들었으나, 막연히 형의 조치만을 기다리에는 걱정이 앞서 결국, 2월말경 형과 복지담당자, 병원관계자 등과 함께 노인을 찾아가 건강상태 등을 확인한 끝에 병원에서 치료 및 보호하기로 했다. 마을사람들은 이제는 노인이 추운 곳에서 떨지 않게 되었다며 다행이라며 마음을 놓았다.

떠나는 노인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산사나이... 추운 겨울산을 헤집고 다니던 노인의 모습이 야인처럼 기억에 오래 남을 듯 싶다. 경찰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사랑과 온기는 나눌 수록 커진다는 진리가 새삼 생각난다. 함께 노력한 주포파출소 소장님, 동료직원 모두 마음 한켠이 푸근해 졌다.

※ 이 글은 충남 보령경찰서 주포파출소 한현남 경관의 체험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