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주욱 끝까지 가면 돼’- 주욱 끝까지는 길입니다. 배가 턱 밑까지 들어오던 대천엔 철길이 있었습니다. 철길 서쪽은 구장터, 동쪽이 신장터니 동쪽 동네는 나중였나 봅니다.
 철길은 기차만 다니는 길입니다. 그래도 그 철길따라 한 마장쯤 가면 철다리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 모습입니다. 이 철다리는 우리의 소년들이 모험을 찾아 나서는 길이었습니다.

시내에서 대천중학교로, 궁말(궁마을, 궁촌)쪽에서 시내 초등학교로 통학하는 소년들은 곧잘 이 철다리 침목을 걸음폭으로, 그 아래 빗기는 냇물을 즐겼습니다. 물론 위험하죠. 언제 그 시커먼 철마가 뜨거운 입김 내 뿜으며 달려들지 모르는데, 그래도 소년들은 용감했습니다. 우리의 용감한 소년들은 용케도 그 비켜가는 길을 찾아냈습니다. 철다리를 받치고 있는 듬직한 콘크리트 구조물(다리)입니다. 침목과 침목 사이를 비집고 몸을 내려야하는 그 길입니다. ‘빼액“ 소리치며 명천 둥근산을 돌아 나오는 기관차를 보면 소년들은 분주해집니다. 조급해지는 가슴 뜀은 소년들만 압니다. 우리의 소년들만이 즐기는 스릴입니다. 어느 땐 돌아가기엔 너무 와 버려 버럭 겁이 나지만 그게 더 잔인한 서스펜스입니다. 이젠가 하면 마치 ’너 여기 있지‘하듯 머리 위를 맹타하며 지나갑니다. 우리의 소년들, 오줌 찔끔인 기막힌 내공입니다. 딴 생각하다 턱 밑일때도 있습니다. 철다리 밑 또 다리, 비상구는 저만큼인데-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소년은 며칠을 가위에 눌리곤 했습니다. 다시는 철다리로 다니지 말아야지 다짐이지만 그 짜릿함을 잊지 못합니다. 어른들은 그 철길을 막으려 애 썼지만 우리의 소년들은 그 철다리 위의 철마와의 숨박꼭질을, 가슴 조이는 유혹을 떨칠수가 없습니다.   그 철다리 밑을 흐르는 시냇물을 어른들은 <보통>이라고 이름 매겼습니다. 여기 보통에서 소년들은 미역도 감고 깨알같은 고동도 잡았습니다. 여름 밤이면 엄니 누나 여동생들이 목욕을 하곤 했습니다. 고추들은 이런 엄니 누나 여동생들을 지켜줬습니다. 그 보통이 겨울이 면 꽁꽁 얼었습니다. 겨울방학이면 내려오는 면장님 둘째아들, 날씬한 스케이트날로 왼발 오른발 바꿔놓은 코너링엔 넋을 놓습니다. 그래 소년들은 두툼한 판자를 잘라 밑판에 철사줄을 단단히 동여매는 걸로 대리만족이었습니다. 하지만 철사가 못 견디고 벗겨지면 아뿔사 코방압니다. 겨울이 지나면 그 철다리 밑, 바다쪽 6~70m쯤엔 궁말로 가는 징검다리가 있습니다. 한 걸음씩 건너 뛰기도 하는 돌다리입니다. 여기에 보물을 부릅니다. 물 밑에 큼직큼직한 돌들을 조그마한 무덤처럼 쌓아 놓으면 이 돌무덤에 보물들이 모여듭니다. 2~3일후쯤 소년들은 준비합니다. 호롱에 작살입니다. 호롱은 잠수경으로 쓸거니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양초로 이음새를 잘 메꿔줘야합니다. 출정입니다. 호롱에 얼굴박고 돌무덤 돌하나 제치면 재빨리 돌밑으로 숨겠다는 미끈한 놈을 봅니다. 놓칠세라 작살, 요동치는 손 맛,  가히 전율입니다.  하지만 불행한 일도 잊을만하면 벌어지곤합니다. 호롱에 얼굴 박았으니 조금씩 사방에 김이 서립니다. 꿈틀하고 호롱밑 잠수창에 장어머리, 작살입니다. 한데 요동치는 손맛이 없습니다. 우리의 소년은 제 엄지발가락을 장어라고 찍었습니다. 이런 사고가 심심찮아 오늘은 누구? 하는 못된 기대는 덤이었습니다. 거기가 이젠 주차장이 돼 버렸습니다. 하상주차장이란 이름으로.

그 징검다리에서 조금 바다쪽으로 둑길을 따르면 망둥어 낚아채는 묘미가 쏠쏠한 낚싯터가 있습니다. 질긴 주낫줄에 지렁이만 잔뜩 매달아 물속에 던져놓고 둑위에서 내려다만 보면 됩니다. 다 보입니다. 지렁이에 망둥어가 얼마만큼 매달렸는지 다 보입니다. 됐다 싶으면 사알살 물밖으로 지렁이 묶음을 잡아 당기기 시작합니다. 가장자리에선 가차없이 재빨리 물밖으로 챕니다. 지렁일 문 순진한 망둥어, 미처 지렁이를 물지 못한 녀석들도 물을 박차고 힘껏 튀어 나옵니다. 장관입니다. 그런 둑길이었습니다.

옛 정거장이 없어졌는데도 일방통행길은 여전합니다. 길은 차도 다니지만 사람도 다닙니다. 차요? 사람이 아니면 못 움직입니다. 이게 길위의 일상입니다.  사람이 움직이는 데가 길이지요. 사람나고 차 나왔다는 얘깁니다. 남이 하니 우리도 , 냇가에 곱게 포장한 주차장을 만들었습니다. 장마이면 뒤집힌 주차장 속살을 보게 됩니다. 그래 제자리 돌려놓는답시고 돈 갖다 붓습니다. 매년 이러지요. 내년쯤엔 물고기가 헤엄치는 자연으로 뒤집겠답니다. 하지만 또! 입니다. 이렇게 뒤집을 일을 또 저질렀습니다.

2011년 9월이었습니다. 작년입니다. 명문당 사거리에서 경남 사거리까지, 이 길에 왕복 2차선을 주차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차가 사람을, 사람도 아닌 것이 이 길을 독차지 했습니다. 차 있는 사람이 차 없는 사람을 벽으로 벽으로 몰아 붙입니다. 사람이 다닐 길은 1m도 채 안되는 폭입니다.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한쪽은 비켜 서 있거나 차 사이로 내려 서야합니다. 한 손에 물건이라도 들었으면 차도로 내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위험하죠. 게다가 주차비도 무료입니다. 안 받습니다. 못 받는게 아닙니다.

저켠에선 차 없는 거리를 만들겠노라 두 팔 걷었는데 보령은, 대천은 겨우 사람 다닐 길 마저 주차장 만들었습니다. 하상 주차장을 자연으로 복원한다는, 그래 없어질 하상주차장을 미리 시내 한복판 길에 확보하겠다는 속내였나 봅니다. 시내 한 복판 길에 주차비 안 받는, 차만 다녀야 하는 철길로 만든, 보령시의 철심장 행정마인드입니다.

(thewalnu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