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영원성은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선정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순환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 많은 무덤들이 돌로 만들어 졌고, 비문이나 불교의 사리탑 등에서 돌이 지니는 영원성의 가치는 충분하다.
보령지방에서 청동기 문화의 산물인 고인돌과 선돌, 수백기가 산재해 있지만 북방식과 남방식이 혼재해 있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특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고인돌과 선돌 문화는 당시 동북아시아의 보편적 매장문화였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들어와서 목탑과 석탑이 함께 사용되면서 많은 불교 유물들이 석탑과 석불의 형태로 현존하기 때문에 현재까지 귀중한 유산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 때 비로소 보령의 돌문화가 시작되었다.
김립지 비문 등을 볼 때 보령엔 많은 석탑과 비문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훼손되고 현존하는 신라의 석공예는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3층석탑 등 주로 성주사지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고, 왕대사 마애석불은 고졸한 멋으로 역시 이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포 오석과 애석으로 만들어진 이러한 불교 문화는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에는 유교문화와 접하면서 각종 비석의 형태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중기 이후에는 벼루가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석재산업이 발전하게 되었다.
조선시대부터 일제에 이르기까지 남포벼루의 산업적 바탕은 전국 총 공급량의 70%를 차지했다는 것을 봐도 그 규모나 가치가 얼마나 큰 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벼루는 석재가공업과 맞물려 보령지역의 가장 중요한 특산물로 자리잡았다.
역사적 가치
남포벼루는 다양한 품질이 생산되었지만 대체로 검은 빛을 띠는 특징이 있어 보통 벼루라고 하면 검은 벼루를 연상시킨다. 최상급의 남포벼루를 이규경은 화초석으로, 정다산은 수침석으로 표현했고, 일반적으로는 백운진상석으로 알려져왔다.
품질이 다양해 조선조 이후 벼루 공급의 70% 이상을 차지한 보령벼루는 서당의 학습용으로부터 사대부 문화를 주도한 선비들의 문방 필수품으로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애용되었다. 즉, 남포석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모든 문화의 생산적 도구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어 조선의 문화는 남포석에 의해 구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예를 비롯한 사군자를 그리기 위해 애용된 남포석은 필력이 경지에 이른 사람들의 평을 들어보면 먹물의 건조가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적당히 머금고 있어 한 번 먹을 갈면 다쓸때까지 농담이 동일하다는 평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장인들 사이에는 원석의 입자가 고르게 분포되어 다양하고 섬세한 조각을 새기기에 아주 적당하고, 제작자의 기능에 따라 자유자재로 벼루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먹물과 같은 검은 색이므로 사용에 무리가 따르지 않은 것이 상품의 인기를 높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오래 간직하고 만질수록 벼루돌이 더욱 검은 광택이 나기 때문에 돌문화와 친근한 선비들이 애장하기 원했다.
1천1백년의 남포오석
석물가공업은 최치원의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가 남포오석으로 만들어져 그 역사적 기원은 1천1백년을 넘고 있으나 연한에 비해 크게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다른 지역에서 보이는 유산중에 간혹 남포오석제품이라고 선전하고 있으나 그 실체는 알 수 없다. 남포오석이 일반화되지 못한 이유는 채굴의 어려움 때문이다. 벼루돌 원석은 작게 다듬어 우마차로 얼마든지 원거리를 이동할 수 있지만 오석의 원석은 대형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채굴도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동과 제작에서도 조선시대의 기술로는 어쩌면 산업화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당시는 주로 하천이나 마른 계곡에 돌출한 오석을 수공으로 다듬어 사용했고, 점차 광맥을 발견하여 겉으로 드러난 부분을 채굴, 사용했으나 조금만 깊이 파묻혀도 당시의 기술로는 오석을 캐내기는 여려웠을 것이다. 이에 비해 애석은 오석보다는 채굴이 쉬워 일반화되기는 했으나 이 역시 일본인들에 의한 근대적인 채굴방법이 도입되기 시작한 20세기 초에 비로소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남포면의 애석광은 남포간척지에 위치한 최고운 유적까지 연결되어 있어 보령에서 가장 먼저 근대적인 석재가공업이 일어났다. 이후 웅천에 전기가 가설되자 그 중심지가 웅천으로 옮겨져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도약을 하게 되고 일본으로 수출길이 열리면서 웅천의 석재가공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약 2년전까지만 해도 웅천은 석가공 공장이 80개소가 있었으며, 종업원도 400여명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정확한 통계조차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침체되고 있다.
주된 이유는 중국의 값싼제품이 우리나라와 일본으로 대량 수출되면서 비교적 생산단가가 비싼 국내산이 경쟁력을 잃고, IMF에 따른 경기침체의 영향이 크다. 생산제품은 묘석 80%, 건축석 15%, 석공예 5%정도의 비율로 생산되고 있으며, 한창때에는 전국 총생산량의 10%정도를 차지했다. 벼루 또한 1년에 10만개 정도의 생산량을 보여 남포벼루의 현대화에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남포벼루도 점차 새로운 수요창출에 실패하면서 침체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돌축제'등 활성화대책 시급
보령의 근대산업은 석탄과 석재가공업, 그리고 벼루 등 돌문화로 시작되었다. 현재 새로운 창출에 실패하면서 사양길에 접어든 이 돌산업은 방치될 수 없다. 그것은 보령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이렇다할 대체산업이 없는 현시점에서 1년에 1천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보령에서 '돌문화에 대한 축제'가 열린다면 새로운 수요창출에 큰 기대가 예상되고 있다.
1천1백년 넘게 지속되어온 돌문화가 또다시 석탄박물관처럼 박제화된다면 우리는 산업의 하나를 포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귀중한 문화유산을 잃는 것이다. 그에 대한 활성화 대책은 현재 석재산업과 벼루제조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우리 보령사람 모두가 조선의 문화를 선도했던 남포벼루와 석재산업의 부활에 대한 의무가 있는 것이다.
(김종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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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5.2 목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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