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용산행 장항선 열차를 타고 가던 박 모씨는 갑자기 소화가 안 되고, 두통이 생겼다. 마침 지나가는 코레일유통(구 홍익회) 판매영업사원에게 “혹시 열차에서 준비하고 있는 소화제가 있느냐”는 질문을 했고, “저는 준비하고 있는 게 없습니다”라는 쌀쌀한 대답만이 돌아왔다. 무안해진 박씨는 승무원이 지나가면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승무원을 기다렸지만, 입석 이용자들이 몇 명 있는 열차 안에서 승무원을 찾기가 어려웠다. 일반 양복과 비슷한 색깔의 제복은 언뜻 승무원과 일반인의 구분을 어렵게 했으며, 빠르게 옆을 지나가는 승무원을 잡거나 부를 순간을 자꾸 놓치기 일쑤였다. 결국 박씨는 승무원에게 도움요청을 포기하고 도착역에 내려 소화제를 사먹었다.

철도공사는 승무사업소와 각 역에 구급함을 준비, 복통, 설사, 찰과상 등 환자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 승객들이 쾌적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열차 내 응급환자 발생 시 관제실에 연락해 가까운 역에 119, 경찰서 등 응급차가 준비되도록 하고 있으며, 객실 내 승객들을 다른 쪽으로 이동시키는 등 비상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안내의 부족, 승무원들이 아픈 승객을 일일이 확인하는 어려움 등으로 승객들이 당연히 받을 수 있는 서비스 혜택을 못 누리거나, 두통, 소화불량 등 경미한 증상에 대한 초기 치료가 어려워 자칫 큰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구급약 지급 안내 부족
소음이냐 정보제공이냐 안내방송 , 문구도 없어

열차 내에는 비상시를 대비해 소화제, 진통제, 외상치료제 연고, 소독약, 반창고 등을 구비한 구급함을 준비하고 있으나, 정작 이런 사실을 모르거나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등 불편사항이 제기되고 있다.

역 관계자에 따르면 장항선의 경우 상행선 열차는 시발역인 장항과 대천, 하행선 열차는 영등포에서 구급약을 준비하고 있다는 안내방송을 한다. 이 말은, 광천에서 수원까지 이용객의 경우 열차 안내방송을 듣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차를 가끔 이용하는 사람이나 노인 등 정보제공이 안된 일부는 열차 운행 도중 경미한 소화불량, 두통 등이 생기면 참거나 잠을 자는 등 자구책을 마련한다.

이에 대해 역관계자는 “기차 잘 안타는 고객에겐 방송이 정보제공 되겠지만, 자꾸 안내방송을 하면 싫어하는 고객 분도 계신다”며 각 역마다 구급약 관련 방송을 하는데 따르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승무사업소에 따르면 “같은 내용 방송을 너무 자주하면 시끄러우니 방송을 줄여달라”는 장거리 이용객들의 민원이 있었다며, 대전, 영등포 등 큰 역에서만 방송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철도공사 서울지사 승무팀 담당자는 “KTX는 자막, 문자서비스를 주로 이용한다며 소음문제 때문에 육성방송은 가능하면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자막, 문자서비스가 없는 장항선의 경우 안내방송이 없는 구간을 여행하는 이용객에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물으니 “그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라고 답했으며, 육성방송이 어려우면 ‘열차 내에 구급약을 준비하고 있으니 승무원에게 문의’라는 식의 문구를 눈에 띄는 곳에 붙일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는 “철고공사 각 지사들의 전체 논의가 있어야지 서울지사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는 문제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승무원 문의 어려워
승객에게 ‘너무도 빠른 당신’, 입석이용객 붐비면 구분도 어려워

몸이 아플 때 반응 속도가 느리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승무원의 걸음이 빠르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열차 안 통로에 입석 이용객이 많은 경우 승무원과 일반인을 구분하는 어려움도 따른다.

박 모씨는 “방송실, 비상마이크 등을 모르는 승객은 승무원에 묻는 방법을 가장 많이 택할 것”이라며 “아픈 환자도 파악하지 못하는 형식적 순회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역 관계자는 “현행 2인 1조로 운영되는 승무원 상황상, 승무원이 노인, 장애인들에 대한 신경은 더 쓰지만 몇 명씩 되는 일반 고객의 어려움을 하나하나 파악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며 “승무원들이 열차 각 칸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인사를 하기 때문에 그 때를 눈여겨봤다가 승무원에게 문의하면 될 것이고, 아픈 고객들도 승무원을 적극적으로 찾는 노력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혼자인 승객이 통증으로 몸을 웅크리는 등 승무원에게 도움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한 대비가 있는지 승무사업소에 물었다.

이에 승무사업소 관계자는 “보통 몸이 안 좋은 고객이 직접 요구를 하거나 주변 승객들이 승무원을 찾는 경우가 많아 그런 경우는 별로 없지만, 그런 경우에는 승객이 아픈 건지 잠깐 움직인 건지 외관상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일일이 고객들에게 아프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라며 “아프냐고 신경 쓰면 귀찮다는 민원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에 승무원 개인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고, 승무원들은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사항에 따를 뿐”이라고 밝혔다.

이에 서울지사 승무팀 담당자는 “순회 시 눈에 보일 정도로 불편하다 싶으면 불편한지 물어봐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얼굴에 크게 표시 나는 등 육안 확인이 안 되면 놓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입석이용객과의 구분 어려움에 대해서 역 관계자는 2005년부터 공사화 되면서 모자를 안 쓰게 됐다며 모자 미착용으로 승무원 분간이 어렵다는 민원이 제기된 적은 있으나, 장항선 전체평균 이용률은 61%라 성수기가 아니면 입석이용객과 승무원을 구분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 대답했다.

이에 대해 승무팀 담당자는 모자 미착용으로 승무원 분간이 어렵다는 민원제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일축했으나, 승무원의 걸음이 빠르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객실 순회 시 적절한 걸음 속도를 계산하는 등 교육하는 방안을 강구해보겠다고 밝혔다.

객실 7~16개, 한 열차에 구급함 1통 비치

서울 승무사업소에 따르면 한 열차에 2인 1조로 승무원이 동승하며, 이 때 휴대하고 있던 구급함 1통을 방송실에 비치, 승객들이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구급약이 필요한 승객은 방송실에 직접 찾아오거나 객실을 순회하는 승무원에게 문의, 또는 각 객실 문 옆에 설치된 비상마이크의 버튼을 눌러 방송실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승무원은 20~30분 간격으로 열차를 순회하며, 이 때 아픈 승객 본인이나 응급환자 주변 승객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방송실에 구급함을 가지러 간다.

보통 열차 한 대당 7~16개 정도의 객실이 있는데 구급함 1통은 부족하지 않느냐는 문제제기에 서울지사 승무팀 담당자는 “구급함 1통이라도 그 안에 의약품들은 수십 개씩 준비돼 있기 때문에 부족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응급환자 발생 시 방송실까지 구급함을 가지러 가는 시간의 문제도 발생한다. 가벼운 증상에 대한 약을 지급하는 경우는 괜찮다 치더라도 응급환자 발생 시 응급처치를 다소 지연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코레일 홈페이지에 접수된 2005년 7월15일자 '고객의 소리'에 따르면 16호차의 한 승객 머리에서 피가 나는 사고가 발생, 상태를 확인한 승무원이 소독약 및 붕대를 가지러 1호차에 갔고, 각 객실의 문 여는 시간, 승객과 유통판매사원에 부딪치는 경우 등으로 응급처치에 걸린 시간은 약 15분이었다.

그 동안 사고자는 머리에 흐르는 피를 휴지로 닦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며 그 긴 열차에 구급함이 한 군데만 있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고, 이에 고속사업단 고속수송처 담당자는 “10호차, 17호차에 비상용품 보관함을 설치할 예정에 있다"는 답변을 달았다.

위 사건을 예로 들며 방송실에 1대만 비치된 구급함에 따른 시간 소요 문제에 대해 서울지사 승무팀 담당자에게 물었더니 처음에는 그거 가지러 가는 데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리겠냐는 반응을 보이다 “고객의 소리는 지사별로 나뉜 고객 담당자들의 답변으로, (구급함 증대 설치 예정)계획상 어떻게 됐는지 파악이 안 돼 답변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물건만 팔면 되는 코레일유통 판매영업사원?

코레일유통(주)은 철도 역 구내 종합매점인 스토리웨이 점포사업, 열차 내 식음료 판매 등 열차사업, 역무위탁사업 등 철도를 기반으로 하는 유통전문 사업체로, 재단법인 홍익회의 유통사업 부분을 인수해 2004년 12월2일 한국철도유통(주)을 설립, 한국철도공사 계열사로 출범했다. 

2007년 3월30일 사명을 코레일유통(주)으로 변경했으며, 한국철도공사가 100% 출자하는 자회사이다.

또한 기획예산처가 올해 4월11일「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제5조 제4항에 따라 고시한 198개의 기타공공기관 중 하나이다.

이쯤 되면 코레일유통 판매영업사원을 단순히 ‘열차 안의 장사꾼’으로만 여길 문제가 아니다.

철도공사의 자회사로서, 기타공공기관의 일원으로서 최소한의 공적인 의무감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열차라는 공적인 서비스를 담당하는 곳에서 독점적인 판매사업을 하는 이가 가져야할 최소한의 도덕적 의무를 묻고 있는 것이다.

위의 박 모씨 사례처럼 아픈 승객에 대한 불친절하고 무책임한 태도는 이런 공적인 의무감의 결여로 의심된다.

역 관계자는 유통 쪽도 서비스교육을 하고 있다며 “법률처럼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철도공사의 자회사로서 승무원에게 알아봐주거나 이용객에게 승무원에게 문의하라는 등 안내의무는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코레일유통 관계자는 “이런 일이 발생해서 유감이다”며 “영업사원이 (아픈 환자에 대한) 안내를 해야 하는 규정은 없지만, 기본적인 자세의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서비스 교육 담당자에게 전해 이런 구체적 사례를 들어 교육을 시켜야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