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필자는 글도 쓸 겸 정신을 맑게 하기위해 일주일의 절반은 시골에 들어가 있다.  아궁이에 나무를 때어 난방을 하는 첩첩산중 마을이다. 그 마을에 혼자 지내는 팔순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서울에서 주말마다 내려오는 이가 있다. 그는 서울로 모셔가려고 하지만 어머니가 응하질 않아 못한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하루는 어머니가 망으로 된 양파자루에 사료용 콩깍지를 담고 있어서 그거로 몇 푼이나 버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한 자루 천원 주는디 운임 빼구 나먼 한 사백 원 남을라나? ...그나마 일이 웁써서 탈이지 일만 많으먼 마늘 까는 것보담은 나아, 죙일 담으먼 한 이만 원은 벌수 있으니께.”

어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은 한 번에 수백만 원씩이나 술집에서 퍼 쓸 때도 많았는데 겨우 사백 원이란 돈 때문에 손이 까지도록 궂은일을 하는 어머니를 보며 답답했다.

“어머니! 그 몇 배라도 용돈을 충분히 드릴 테니 당장 그만 두세요!”

“뭔 소리냐? 돈의 가치는 액수루만 따지는 게 아녀. 워치기 번 돈이냐랑 워치기 쓰냐루다 그 돈의 가치를 따지는 거여. 아무리 큰 돈이래두 도둑질이나 사기루다 벌던지 가만히 앉어서 노력 웁시 번 돈은 돈이 아녀. 단돈 사백 원이래두 내 손으루 일헤서 번 돈이 진짜 돈이지. 그리구 돈을 보람있게 쓰야 돈가치를 살리는 겨, 그러잖으먼 돈을 휴지만두 뭇허게 쓰는 거여.”

어머니 말뜻을 알아들은 그는 자신이 그동안 너무 돈을 쉽게 벌고 함부로 쓴 것 같아 부끄러워지더라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필자도 부끄러워졌다. 어떤 물질이던 어떻게 얻은 것이며 어떻게 쓰이는지에 따라 그 정신적 가치가 다르다는 진리를 망각하고 있었다. 거저 얻었든가 남의 것을 갈취한 것이라면 그 가치가 있기나 할까? 또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한순간의 무의미한 향응이나 도박으로 허비하든가 또는 남을 해치는데 사용한다면 과연 그 돈의 가치가 있을까? 단돈 백 원이라도 꼭 그 백 원으로 귀한 생명을 구했다든가 곤란에 처한 이를 구제했다면 그 돈의 가치는 어마나 될까? 지구상의 육십억 인구 가운데 단돈 천원으로 하루 세끼를 살아가는 인구가 약 이십억에 이르며 이천 원 미만으로 세끼를 해결하는 인구 층이 절반을 훨씬 넘는다고 한다.

이들에겐 단돈 천원이 우리의 천원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누리며 잘살고 있는 우리는 날마다 경제가 어렵다고 말하지만 돈을 얼마나 가치 있게 사용하면서 경제 타령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물론 생계 때문에 가족동반 자살하는 빈곤층이 많아지고 있기에 더 경제를 걱정하는 것일 게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도 극빈자들이 인구의 십이 퍼센트가 넘는다고 하니 더 가난한 우리사회야 말할 것도 없겠다. 그러나 이 빈곤층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정부만 탓할 일은 결코 아닌 것 같다. 많이 가진 이들이 더 많이 갖기 위해 빈곤층에게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조차 빼앗아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예를 들면 집 한 칸도 없는 사람이 집 장만할 꿈을 갖고 평생 모았는데, 욕심 많은 자들이 몇 채에서 수십 채씩 사재기 하여 집값을 올려놓아 집을 살 수 없게 만든 일이 그런 것이다. 이런 욕심 많은 자들은 가난한 이들의 몫을 간접적으로 갈취하는 악을 행하고도 정당하다 주장할 정도로 옳지 못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부자라고 무조건 나쁘게 여겨서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사람을 돈의 힘으로 지배하려하지 않고 정당하게 벌어 많은 이들에게 이익을 베푸는 부자라면 저절로 존경하고도 남을 것이다. 욕심만 가지고 경제, 경제 하며 급하게 무엇을 이루려고만 하는 것보다 팔순노인이 사백 원의 가치를 크게 여기듯 지금 지닌 것만으로도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을 찾으면 우리의 행복은 더 빨리 올 것이라 생각된다.

/프리랜서 안학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