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두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젊은 날의 군대이야기, 그리고 아직도 대폿집의 화제로 선거 이야기가 월드컵 다음으로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지난 5·31 지방선거는 이래저래 남은 여운들이 여전히 우리들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온 지구촌이 들썩거리는 월드컵이라는 것만 해도 승부차기를 하지 않는 한, 무승부가 있게 마련이고, 솔로몬의 지혜가 동원된다는 재판에도 합의라는 게 있다지만 선거판에는 절대로 무승부는 없다.

그래서 선거 결과는 항상 당선자와 낙선자로 판가름 나게 되고, 당선자만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고, 반대로 낙선자는 세상의 온갖 무능의 대명사라도 된 듯, 천형(天刑)의 유배라도 당하듯, 그렇게 무대 뒤로 소리 없이 잊혀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낙선자도 당선자 못지않게 우리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선거에 졌다고 그의 인생이 실패한 것이고, 그의 인격이 낙선된 것이고, 그의 봉사가 헛되고 헛된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부산의 어느 구의원처럼 선거기간 동안 내내 실종되어 유권자 앞에 얼굴 한번 비치지 않았더라도 묻지마 투표로 당선이 됐다든가, 출신지역의 유권자들이 몰표를 주어 당선이 됐다든가, 성씨를 잘 타고나서 앞선 기호를 받을 수 있는 조상의 음덕이라도 받았던가, 지역을 휩쓴 싹쓸이 바람 앞에서 낙선이 된 그들이라면, 더욱 소중하다.

아무리 세상이 온통 1등만 바라보고 꼴찌를 외면하는 세상이라지만, 사람들은 알고 있다.

오늘의 실패를 딛고 내일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골목골목을 누비며 인사를 다니고, 언제나처럼 봉사의 현장에서 여전히 환한 얼굴의 낙선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이미 그들은 ‘지고도 이긴 자’가 돼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낙선은 했지만, 자신이 내걸었던 공약의 실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현수막을 내걸고 다짐하는 그들이라면, 자신의 부족을 겸손해 하며 성원에 감사하며 낙선자라도 공약실천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가진다면 이미 그들은 낙선자가 아닌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전히 지역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앞장서며 낙선자들이 모여 의정을 모니터하고 연구하고 감시하고, 지역의 문제를 공부한다면 이미 그들은 낙선자가 아니라 ‘지고도 이긴 자’가 돼 가는지도 모른다.

선거야 말로 월드컵의 축구공처럼 둥글어 이기고 지는 것이 예측불허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축구경기 같은 것이 아닌가.

이번 선거의 낙선이 생의 전부가 아니고, 선거가 이번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면, 그리고 무엇보다 사심 없이 지역에 봉사하고 헌신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분명히 다음선거는 낙선자, 그들을 당선자로 맞이할 영광의 그날로 준비돼 있을 것이다.

인간만사(人間萬事)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들 말한다.

우리 모두 낙선자들에게도 힘찬 박수를 보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