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1일 0시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과 이들이 살고 있는 주택을 조사하는 인구주택 총조사.

‘모든 사람’이란 단어속에는 한국인을 포함해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모든 외국인도 해당됩니다.
예전에는 외국인이라고 해야 유학생이나 주재원들이 대다수였지만, 요즘에는 외국인 근로자나 산업연수생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눈에 띄게 늘었답니다.

또 지방에서는 국제결혼도 무시 못 할 수준이죠. 우리 지역에도 일본인을 비롯해 방글라데시인, 스리랑카인, 조선족까지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사도 준비부터 현장 조사까지 품이 많이 들어갑니다.

문제는 불법 체류 외국인들의 조사입니다.

외국인들은 자신이 불법 체류자 신분이다 보니 조사에 잘 응하지도 않고, 서로에 대해 이야기도 잘 안합니다. 외부인들을 철저하게 경계하고 정부에서 나왔다고 하면 무조건 단속으로 생각해 숨거나 도망 다녀 조사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공장단지 부근 조사를 나갔을 때였습니다.

20대 중반 몽골 여성이 빨래를 하다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그녀는 우리 얼굴과 많이 닮아 있어 외국인이라는 느낌도 들지 않았고 한국어도 꽤 능숙해 조사에 별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구원 수를 물으니 한 명이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혼자 산다고 보기에는 살림도 꽤 많았고, 남편인 듯한 사람의 사진과 얼핏 본 빨랫감에는 남자의 셔츠인 듯 옷도 몇 벌 보였답니다.

이 조사를 통해서 어떤 피해도 없을 것이고, 몇 사람 거주하는 지 파악만 한다고 설명해도 그녀는 고집스럽게 ‘혼자산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무래도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것 같아 일단 인사를 하고 일어섰는데, 불쑥 현관문이 열리더니 사진 속 남자가 성큼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모두가 놀란 상황이었고, 급하게 뒤돌아 나가려는 남자를 붙잡고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남자는 우리를 외면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긴장한 기색의 여성이 대답했습니다.

‘들어온 사람은 남편이고, 나는 합법적인 체류자이지만 남편은 올 초 비자가 만기돼 불법체류자 신분이다. 만약 법무부에 통고 하면 바로 강제출국 당하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 할 수가 없었으며, 지금 돌아갈래도 한국 올 때 진 빚이 있어 돌아가서 살 길이 막막하다. 몽골에서는 대학까지 나왔지만 지금 나는 공장에서, 남편은 건축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살고 있다. 아직은 돌아갈 때가 안됐다. 열심히 살테니 제발 모른 척 해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조사를 마치고 나왔지만 코리안 드림을 따라 낯선 나라에 와서 불법과 합법을 넘나들며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을 보니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아이들도 대물림되는‘불법체류자’라는 멍애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적응 못하는 아이들이 대다수였고, 한국에서 태어났다 해도 다른 외모· 신분으로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또, 부모 중 한쪽이 단속으로 강제 출국 당해 가족끼리 생이별을 한 이들도 봤습니다. 마치 인간이 새겨놓은 또 하나의 ‘주홍글씨’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불법체류자들은 우리에게 몇 번이고 신고하지 말아달라고 다짐을 받곤 했습니다. 그 만큼 그들에게 현실은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그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희망의 땅’이었습니다.

한 외국인은 한국에서 버는 돈의 대부분은 필리핀에 있는 9명 가족들의 생명줄이라고 했습니다. 월급 대부분을 고향에 보내고 자신은 최소한의 생활비만으로 살고 있지만, 몇 년 만 더 고생하면 고향에 돌아가 작은 가게를 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소박한 꿈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 바람속에는 가족 모두의 ‘미래와 희망’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오래전 우리도 그랬습니다.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 일본과 유럽,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습니다. 시련과 고난을 넘어서 그들은 타국에 뿌리를 내려 이제는 우리의 자존심이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이들의 ‘송골로스(무지개 뜨는 나라)’가 되고 있습니다.

꿈과 소망으로 낯선 나라에 둥지를 튼 그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사람답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