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을 여남은씩이나 거느리는 어느 젊은 대지주가 있었다.

이 지주는 늙은 부모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받아서 대지주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정신이 팔려 집안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비싼 임금을 주겠다는 조건으로 자신을 대신해서 일 해줄 청지기를 공개모집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주는 일만 벌여 놓고 청지기를 뽑는 일조차 늙은 부모에게 맡겨두고 매일 밖으로 돌았다.

그것을 알게 된 한 건달이 늙은 부모를 은밀하게 찾아다니며 선물공세와 갖은 아부를 다했다. 뽑아주면 일 잘하고 잘 모시겠다는 약속까지 하며 매달렸다. 아무 것도 모르는 지주는 청지기 뽑는 날에도 친구들과 내기 경기에 빠져 집안일엔 관심조차 없었다.

결국 늙어서 정신도 없고 순진한 부모는 건달을 건달인줄도 모르고 청지기로 뽑아놓고 말았다. 청지기로 뽑힌 건달은 젊은 지주의 재산을 하나 둘씩 빼내기 시작했다. 외양간 세운다고 빼먹고, 농기계 들이면서 빼먹고, 가축사료 들이면서 빼먹고, 밭갈이할 때 농주 값에서 빼먹고, 정미소 주인과 짜고 빼먹고, 이리저리 요것조것 빼먹는 것만 눈독들인 청지기는 일도 그르치고 다른 일꾼들까지 물들였다.

그러다 보니 지주네 살림은 표 나게 줄었고 자연스럽게 청지기에 대한 비리가 드러났다.
청지기를 잘못 세운 것을 깨달은 젊은 지주는, 부모에게만 맡긴 자신을 크게 후회했지만 이미 때늦은 뒤였다.

단체장이나 기초의원은 그 지역의 일꾼이다.

흔히 단체장을 두고 지도자라고 칭하지만 그 지역의 주인이 단체장이란 말은 아니다. 지역의 주인은 주민이다. 이는 웬만하면 아무나 다 알고 있는 원론이지만, 아직도 주인인 주민을 머슴으로 알고 머슴인 단체장을 주인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것은 과거 전제정치 때부터 내려온 계급주의의 잔재이거나.

일제시대 제국주의 아래 무조건 복종하던 패배주의의 변이일 것이다. 그러므로 주객을 바꿔버린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옛날 전제정치 때도 민심은 천심이라 하며 제왕보다 백성을 하늘로 여겼던 것에 비하면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당히 주인의식을 가져야한다. 주인에겐 능력 있고 정직하고 성실한 일꾼을 선택하여 세울 권리가 있고, 일을 잘하도록 잘 감시 감독해야 할 권한이 있다. 또한 그 일은 소홀히 할 수 없는 주인의 직무이기도 하다.

그 직무를 다하기 위해서 우리는 유권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오는 5.31 지방선거는 우리가 우리지역의 청지기를 뽑는 날이다.

정치에 관심 없으니 투표도 않겠다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이도 있다. 아예 투표 날 투표할 생각은 전혀 없고 오직 야외로 놀러갈 계획만 짜는 사람도 볼 수 있다.

투표는 자신의 권리이고 권리란 포기해도 무방한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한 행동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악의적인 짓임을 모르고 하는 행위다. 작은 단체라 해도 그 단체에 소속 되었다면 단체의 일에 적극 참여해야 도리다. 하물며 국가나 지방이란 단체에 소속 되었다면 그 단체를 위한 중요한 일에 적극 참여해야 옳지 않은가? 그러므로 투표는 유권자에게 부여된 권리이자 윤리적 의무인 것이다.

즉 투표를 포기하여 잘못된 청지기를 세우게 되었다면 그만큼 그 사회에 위해를 끼친 범죄가 된다. 이런 사람은 지방자치부가 잘못되어도 지방행정을 그르쳤어도 논하거나 탓할 자격이 없다. 자기 할 일을 팽개치고 내기 경기만 즐겼던 젊은 지주처럼 직무유기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물론 부득이한 일로 투표에 참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투표를 못할 만큼 바쁘거나 부득이하다고 내세울만한 일인지 생각해보아야할 것이다.

이번 지방 선거엔 모든 유권자가 참여하여 권리도 지키고 직무의 책임도 다해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