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일년 중 생의 에너지가 가장 충만한 달이다. 유난히 잦은 비로 축축한 대지에서 올라오는 수분을 빨아올린 나무들이 앙증맞게 연푸른 이파리를 달고 거리마다 초록의 정기를 뿜어낸다.

도로 옆에는 불럭마다 풀을 뽑고 팬지를 가꾸는 아낙네들의 손길 또한 분주하다. 분홍의 꽃 잔디 사이로 다소곳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수선화를 보니 얼마 전 아들이 던지고 간 말이 떠오른다.

“저리도 무심하게 피어난 꽃들을 보니 더욱 슬프다.”고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채, 신학이라는 학문의 모순과 괴리감속에 번민하는 듯 여겨졌다.

자신에게 주어진 삼년이라는 어려운 시간을 잘 보내고 학교로 돌아간 아들이 주말을 이용해 집에 다니러 왔다. 아들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한참을 울었다. 전날 서로 통화해 내막은 대충 알았지만 학교에서 일어난 사고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햇살이 투명하게 내리꽂히던 성금요일 오후, 그날은  야외수업으로 운동장에서 전공 수업을 듣던 학생들을 향해 자동차 한 대가 그냥 돌진해왔다고 한다.

운전을 할 줄 모르던 다른 과 학생이 무모하게 운전대를 잡은 것이 화근이었다. 개교이래로 열두 명의 사상자를 낸 가장 큰 사고였다는 것이다. 수업을 이끌며 광경을 지켜봤던 담당교수는 충격으로 한동안 말을 잃었다고 전한다.

그 순간 빛바랜 아스라한 기억 속에, 그분은 책을 고르는 안목과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만으로도 대학생활에 크게 의미를 부여했던 분으로 내게 각인되었다. 핸섬한 외양에 날카로운 질문으로 뒤늦게 학구열에 불탄 우리를 숨 막히게 했다. 한때나마 가슴을 설레게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느닷없이 들이닥친 선생님의 아픔에도 마음이 쓰였다. 

아들이 켜놓은 컴퓨터에서는 후배가 시를 써 곡을 만들고, 선배가 부른 단조풍의 처연한 노래가 연이어 흘러 나왔다. 국화 분향 단 위에 놓인 초상화를 보니 아마도 입학할 때 찍은 사진인 듯 참으로 고왔다.

예행연습도 없이 일순간에 정지된 모습처럼 우리네 인생길이 어찌 이리도 덧없을까.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후배를 부모의 동의 하에 채플실 앞, 벚나무 아래 고이 잠재우고 ‘소연이 나무’ 라는 팻말을 걸었다고 한다.

대퇴골이 부서졌어도 가해자가 받을 상처를 염려하며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 찬송을 부르는 정경이 더 슬픈 이유였다고... 몸이 불편한 아버지와 살던 아들이 평생 누워 지내야 한다며, 사는 것이 행복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는 의사의 말은 파란 많은 삶을 예고해 주는 말이라 짐작된다.    

부활절 아침, 어린이 설교를 하면서 아들은 연신 눈물을 닦았다. 전하는 메시지 속에 애틋함이 묻어나 나 역시 눈시울이 붉어져 잠시 환기 시키려고 뒤를 돌아보니 아이들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최근 아들이 겪어낸 일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버거운 일이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후로 몇 주 동안 침울했던 아들은 먼저간 자의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듯 서서히 생기를 되찾아갔다.

이렇듯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엄청난 일을 겪으면 고통을 느끼며 죽음 앞에 무력해지기도 한다. 5 18 민주항쟁 속에 피로 얼룩진 광주 시민들의 희생으로 이 땅에 민주화가 정착됐듯이, 아득한 역사의 뒷면으로 흘러갔어도 우리가 아직도 잊지 못함은 앞서간 자들보다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 더 크기 때문이 아닐까.

휴식과 동면의 계절이 있기에 푸르른 오월이 저토록 싱그럽듯이, 절망과 희망, 삶과 죽음이 공존하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눈물겹도록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이리라. 

<보령도서관주부문학회보령예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