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작가의 문학 강연을 듣고-

작가들의 강연은 대체로 본인이 작가가 된 동기를 시작으로 전개된다. 

공선옥 작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꾸밈없고 수수한 그녀의 말솜씨는 지명도 높은 소설가 임에도 불구하고 이웃집 언니처럼 편안했다. 

작가가 된 자신의 자취를 따라가 보면 그곳에는 가난과 외로움이 있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언젠가 그녀와의 인터뷰가 실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유년시절 시궁창에서 파낸 지렁이로 죽을 쑤어 먹고, 배곯지 않기 위해 공장기숙사로 들어가기를 기다렸다는 기사가 나를 서글프게 했었다.  아무리 진실이라도 가난이 자랑은 아닐 터, 어쩌면 감추고 싶은 상처를 그녀는 적나라하게 펼쳐놓고 있었다.  아니, 그녀는 지독한 가난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공선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의 눈앞에서 똑똑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어느새 안면도 산골의 초가집에 앉아 있었다.  산 중턱을 거대한 삽으로 떠낸 듯 움푹 들어간 곳에 억새로 이엉을 엮은 초가집 한 채가 그림처럼 서 있다. 뒤뜰은 산을 깎은 그대로 황토 빛 속살을 드러내고, 거짓말처럼 복숭아나무 열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었다.  여름이면 모깃불 피워놓고 멍석에 둘러앉아 털복숭아를 쓱쓱 문대어 한입 베어 물면 아삭아삭한 살맛으로 온통 행복했었다. 

학교에 가기위해 언덕을 넘고 개울을 건넌 후 몇 개의 산을 지나면 무시무시한(?) 신작로가 나왔다.  학교 가는 날보다 김매는 날이 더 많았고, 돌아와서도 소고삐를 쥐고 들로 나가기 일쑤였다.  언덕을 내려올 때면 책보 속에 들어있는 빈 양은도시락이 달그락거리며 장단을 맞춰주곤 했다. 가난을 인지하기에는 너무 어린 초등학교 2학년 아이였다.  누구나 그렇게 사는 줄 알았고, 그것이 고생이라고, 가난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얼마 전에 29년 만에 나의 고향 안면도를 찾아갔다.  안면면 누동리 고누지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물어물어 찾아간 그곳은 정말 인적 드문 산골이었다. 그 때의 초가집이 남아있을까 싶긴 했지만 막상 조립식 건물이 들어선 것을 보니 말할 수 없이 서운했다. 우리가 이사 온 이후로 쭉 그곳에서 사셨다는 할머니는 친절하기 그지없었다. 

초가집이 불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새로 지었다고 말씀 하시면서 집 안으로 안내하셨다.  그러나 나는 먼저 뒤뜰로 달려갔다.

유년의 기억 속에 아련히 서있던 대추나무와 복숭아나무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없다.  아무 것도 없다. 돌아서려는 순간, 앗! 남아있는 게 있었다.  그것은 바람막이가 돼 주었던 황토 빛 담. 그리고 무성한 들풀들...

고향을 찾을 때부터 원형 그대로 남아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변했더라도 괜찮았다.  고향의 풍경은 이미 부술래야 부술 수도 없고 태울래야 태울 수도 없는 마음의 터에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유년의 앞산과 뒷산은 내게 친구요 책이요 그림이었다.  그 산에 있는 옹달샘마냥 깊은 심중에 있는 시심을 끌어올리는 두레박이었다.  사람하나 찾아오지 않는 외딴 산골이었지만,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지낸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모른다.  

비록 가난하였다 하여도, 비록 외로웠다 하여도 황토 빛 담을 비집고 나온 들풀처럼 그곳에서 문학의 생명은 시작되었다.  살아 온 날들을 되짚어보면 봄빛 화사한 뜨락은 아닐지라도 지금의 나-변변히 내놓을 것 하나 없다하여도-를 존재하게 하는 나만의 고향을 가지고 있음에 행복하다. 
<보령도서관주부문학회보령예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