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는 때도 있다. 필자도 며칠 전 승용차 브레이크가 고장인데 단돈 오만원이 없어 못 고치고 있었다. 그 사정을 알게 된 한 친구가 선뜻 오만 원을 주었다. 우선 급한 대로 낼름 받아 차는 고쳤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빌려 쓴 것으로 알았기에 돈을 돌려주려는데 친구가 받지 않는다. 아무리 돌려주려 해도 끝내 받지 않으니 마음이 편치 않다.

요즘이 5.31 선거를 앞둔 때이기에 더욱 그렇다. 절대 그럴 리는 없다 하면서도 혹시 이 친구가 어느 한 입후보자의 심부름을 했다면 어쩌나 해서다. 그러나 친구는 자기를 그런 사람으로 밖에 안보냐고 화를 냈다. 오만 원 때문에 우정에 틈이라도 생길까 두려워 여태 돌려주지 못한 것이다.

이 일을 흔히들 괜한 기우라 여길지도 모른다. 그냥 좋은 뜻으로 알고 고맙게 받으면 될 일이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이렇게 예민하지 않고는 절대로 깨끗한 선거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날 선거 때마다 무성하게 일어났던 뒷거래 식 선거운동이 그랬다. 후보자의 부정보다 유권자들의 염치없는 요구가 혼탁한 선거의 더 큰 요인이 되었다.

선거사무실이나 입후보자를 직접 찾아가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하거나 관광여행비용 등의 대납을 요구하는 사례 따위는 허다했었다.

어떤 이는 아예 선거 때만 되면 한몫 챙기기 위해 나선다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였다.

자신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그 후보자의 약점을 잡아 뜯거나 음해하고 응하면 그 후보자가 어떤 인물이 되었든 지지하는 과거의 선거풍토였다.

이번에 마련한 선거법에 대해 ‘있는 돈 쓰려고 나온 사람인데 마음껏 쓰게 하고 그 덕에 없는 사람 얻어먹게 하지 그나마도 못하게 했다’고 불만을 표시하는 유권자가 아직도 있다. 이와 같은 유권자가 많다면 깨끗한 선거는 기대하기 어렵고 정치개혁이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이에 아울러 정치의 잘잘못을 말할 자격조차 잃는 것이다.

선거에서 무리하게 돈을 많이 써야 당선한다면, 당선한 자가 본전을 찾기 위해 어떤 식으로 일할 지는 뻔하다. 또한 아무리 능력이 있다 해도 가난하면 정치할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니 이 또한 사회 양극화의 요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능력 있고 정의로운 당선자를 배출하려면 불법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자를 필히 낙선시켜야 하고, 금권선거를 부추기거나 유도하여 후보자에게 부담을 주는 사람들은 스스로 부끄러워서 사라지게끔 사회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이번에 도입되는 메니페스토 운동이 잘 발전한다면 그런 사회분위기 조성의 기초가 될 것이다.
무능한 후보자가 불가능한 공약 남발로 당선하여 아무 공적 없이 임기를 보내거나 지역 발전에 이롭지 못한 일을 한다면 그 사회는 그만큼 퇴행하는 것이다.

후보자의 능력을 철저히 평가 검증하여 능력 있고 정의로운 후보자를 육성하고 배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한 이들이 임기동안 얼마나 자신들의 공약을 지켰는지 꼼꼼히 따져보고 이번 선거를 통해 꼭 심판해야 한다.

5.31지방선거가 이제 시작하려는데 이미 선거법을 어겨 고발조치 된 후보들도 있다고 하니 앞으로 얼마나 혼탁해질지 걱정이다. 그럴수록 유권자가 예민하게 촉각을 세워 감시해야 마땅하고, 스스로의 정신자세를 올바르게 가져야 한다. 그래야 후보자의 자격여부도 제대로 가려낼 수 있고 실현 불가능한 장밋빛공약, 백화점식 공약, 나 몰라라 식의 공약이 아닌 꼭 지키려는 공약인지를 제대로 평가 검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 5.31지방선거만큼은 유권자의 깨끗한 정신으로 부끄럽지 않고 보람 있는 결과를 얻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