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20여년을 넘게 한 울타리속에서 살아온 부부일지라도 그 긴 세월동안 한 번의 다툼도 없었던 부부를 찾으라면 찾을 수 있을까?
아마 찾기 힘든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 그런 사람들이 있다.
한 울타리속에서 사는 부부는 아니다. 그렇다고 일가친척, 가족도 아니다. 하지만 한 가족이나 다름없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얼굴을 맞대고 살아왔다.
짧게는 몇 년에서부터 길게는 30여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서로 힘이되고 챙겨주면서 말이다.
그들은 바로 재래시장을 지키는 토박이 상인들이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그에 더해 대형 마트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또한 허리띠를 졸라매고 '절약'만을 외치는 고객들 탓에 수입이 턱없이 줄었다. 때문에 가게 세를 내고 나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때도 있었고 이러한 걱정에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바로 옆가까이에서 힘이 되고 어려워도 함께 이겨 나가자며 따뜻하게 손을 잡아 이끌어 주는 이웃들이 있었기에 오랜 세월을 견딜수가 있었던 사람들.
왁자지껄한 아우성속에 서민들의 애환과 진솔한 삶의 모습이 숨어있는 곳, 자유시장내 대성전기 최원용(54세)·안옥순(47세)부부를 비롯한 주변 이웃들을 오늘 이사람으로 소개한다.
"20년이 넘게 날마다 얼굴을 부딪히고 생활하다보니 네일내일이 없어요. 서로 가족처럼 챙기고 도와주고 희노애락을 함께하면서 생활합니다."최씨의 말이다.
대성전기를 주축으로 이웃에 위치한 형제화점, 광진당 등 주변상가의 상인들은 짧게는 20년에서 길게는 30년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즐거운 시장통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다. 또한 가끔 한 번씩 종목이 바뀌면서 새롭게 들어오는 신입 상인들 조차 넉넉한 인심과 풋풋한 정에 자연스럽게 융화를 이뤄가는 곳이다.
"기존 상권을 가지고 있는 분들, 밭에서 애써 일군 채소나 과일 등을 매일매일 가져다 파시는 할머니, 장날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상인들까지 많이 모일때는 20명은 족히 넘는 듯 합니다."
대부분 이 곳에 상권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집 주인이 아닌 세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어쩌면 단 돈 천원이라도 더 벌어 가게세를 내야하고 또 이것저것 생활을 위해 억척을 부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그렇게 생활하다 보면 삶의 무게가 너무 버겁게 느껴질 듯'하고 '너무 야박하고 인심 사나운 일'이 될 것 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마음을 열고 가족처럼 생활하기를 꺼려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식사 때가 되면 '나도 밥 좀 줘' 하고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사람들, 그리고 '밥 이 모자라? 하면 내가 밥 가져올께'하며 흉허물없이 모인 많은 사람들과 밥 한 숟가락의 정을 돈독히 해 가는 것이다.
물론 신발가게, 금은방, 아이용품점등 가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친목 모임의 주축이 되지만 그들중에서도 주축이 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손 크고 인심좋기로 소문난 대성전기 안주인 안옥순씨 이다.
"수돗가에서 김치를 담으면 그대로 가지고 들어가는 법이 없고 주변에서 장사하시는 분들 과 골고루 나눠 먹어요. 또 커피 한 잔을 마셔도 혼자 마시는 법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이웃 여기저기서 같은 마음들이 표출이 되는 것이죠. 참 보기 좋아요." 바로 옆 중부시장에서 30여년동안 중앙라사를 운영해 온 안영래씨가 주부 안씨를 일컬어 하는 말이다.
이 곳 사람들은 절대로 큰 소리를 내는 법이 없다. 또한 잠시 잠깐 다른 곳에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문을 잠그지 않는다. 이유는 다른 가게의 주인이 없으면 대신 팔아주고, 서로 물건값을 알아 장사를 해 줄 정도로 친밀하며 그러다 보니 아무리 어려워도 넉넉한 인심으로 가족처럼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하루종일 장사만을 위해 생활한다면, 너무나 삭막하고 답답하잖아요. 서로 웃고 정을 나누며 살아야죠. 가끔은 퇴근시간을 잊을 정도로 주변 이웃들과 재밌게 보냅니다."최씨의 말이다.
이들 대부분 부부가 함께 이른 아침 8시면 출근해 보통 오후 9시까지 일을 한다. 그리고 그 곳의 상인들 대부분 40대에서 50대 또래들이 모여있다보니 부인들은 부인들대로, 남편들은 남편들 대로 친구같이 편하게 지낸다.
"막상 다른 일을 해야한다면 자신이 없어요. 일도 일이지만 이곳을 떠나기 싫거든요. 정말 정이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살다보면 힘든일이 왜 없겠어요. 하지만 서로 도움이 되도록 웃으면서 즐겁게 살자고 마음을 먹습니다. "
이 곳 시장통 사람들 대부분의 생각일 것이다.
이권을 위한 자리다툼, '남들보다는 내가 더'라는 생각으로 가까운 이웃 조차 짓밟고 일어서야 직성이 풀리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모습에 비해 어렵지만 정을 나누고 오가는 웃음속에 밝은 삶을 꾸며가는 자유시장통 사람들.
경제적인 큰 부자가 아니어도 마음만은 그 누구보다 갑부라는 이들의 따뜻하고 정겨운 웃음이 좋았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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