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디 흔한 풀 한포기가 아니었다. 더 이상 발에 채이는 하찮은 돌멩이가 아니었다. 그곳에 가서는 돌틈에 쌓인 흙먼지도 절대 예사롭게 흘려볼 수 없었다.
마을 어귀에서 이방인을 맞는 것은 벼가 자라는 무논의 백로떼다. 한가롭게 무논을 거닐고 있는 백로들의 자태에 흠뻑 빠져 달리듯 다가가서는 움찔 놀라고 말았다. 진짜 백로가 아닌 마을주민들이 만들어 설치한 미술작품이다. 하지만 짙은 녹색의 하늘거리는 벼포기 사이에 들어서 있는 백로떼는 가공된 백로의 모습이 아니다. 천연덕스럽게 한 낮의 볕살을 즐기는 멋스러운 그 백로다.
'예술이 곧 농사요(藝卽農) 농사가 곧 예술(農卽藝)임을 실증해낸 마을' '살아 있는 생명문화 신토불이 마을의 예술혼' '대지미술 자연미술의 완성' ... 주민들과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마을 어귀로 한발한발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이 같은 설명이 하나도 과장된 것이 아님을 깨닫기 마련이다. 고추밭가에 있는 똥장군, 마을 할머니의 손때 묻은 소원이 배어 있는 구멍뚫린 고목나무, 고추가 마르고 있는 장독대, 살뜰하고 정갈한 살림살이의 모습을 담은 살강, 처마밑 제비집, 참게잡는 아이...
마을을 끼고 흐르는 도랑에, 처마밑, 추녀끝, 지붕 위, 돌담아래, 돌담틈, 대문앞, 계단난간, 장독대, 마당, 나무위, 고추밭, 골목길... 마을 주민들의 손과 발, 눈길이 가는 곳곳에 자연과 어우러진 생생한 문화와 예술이 숨쉬고 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간혹 어느 것이 출품된 작품인지 몇 번을 둘러보아야 할 때도 많다. 반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옛 시골살이에 대한 향수와 추억이 아련히 되살아나 감회에 빠져들게 한다.
미술제의 주인은 당연 마을주민이다. 열 다섯 아이에서 여든한살 노인에 이르기까지 마을주민 73명이 작가로 참여했다. 전국 각지의 60명의 작가를 초대한 것도 이들이다. 작품의 소재(재질) 또한 절구통, 지게, 지푸라기, 생활용품 등 이 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한정했다.
물론 처음부터 마을 주민들이 예술작가를 자임하고 나선 것은 아니다. 이 마을에서 처음 자연미술제가 열린 것은 지난 93년이다. 당시 부산경남지역 청년작가 30여명이 '농촌과 자연을 배우자'며 찾아와 마을회관에서 머물며 야외작업을 시작한 것이 발단이 됐다.
처음에는 시골마을에 찾아와 예술을 하겠다는 이들의 행태가 별스러워 보여 꺼렸단다. 하지만 외부작가들의 표현방식을 보면서 생명을 다루는 농민들이야말로 최고의 자연예술을 표현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지난 해부터 미술제의 주인이 외부 초대작가 중심에서 마을주민으로 바꿨다.
이 마을 주민 이성진(36. 미술제 홍보부장) 씨는 "몇년째 미술제가 열리면서 마을이 웃음과 얘기꽃이 끊이지 않는다"며 "침체된 농촌의 어려움을 자연예술로 승화시켜 극복해가는 마을 주민들이 너무도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 씨는 또 "내년에는 다른 지역의 일반인들도 작품설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설치 기간 동안의 숙박과 식사 등 비용은 예년처럼 마을에서 부담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마을길을 오르다 만난 한 할머니는 대뜸 "내 작품은 저 아래 있어" 한다. 주민들 모두가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며 자연 속에 담겨사는 마을. 삶의 애환과 소원, 자연의 가치가 고스란히 스며있는 진솔한 예술혼을 간직하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
충남 공주시 신풍면 동원리 1구 원골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진짜배기 농경문화와 마을문화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 어린시절 그때의 고향마을의 정취를 다시 맛보고 싶은 사람들, 자연과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고 싶은 사람들... 원골마을은 이런 사람들을 기다리며 찾는 이들에게 기대 이상의 무엇을 안겨 준다.
원골은 대전에서 유구, 아산 방향의 국도 32호선을 따라 50여Km를 가다 신풍면사무소를 지나자마자 우회전하면 된다. 지난 7월 25일부터 7월 31일까지 작품을 제작해 설치했으며 8월 1일부터 오는 31일까지 전시기간이다. 2.5km 마을 안길을 따라 150여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으며 소요관람시간은 2시간 남짓. <행사본부:041-841-5420>
【협회=심규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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