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일. 청양군 홈페이지 게시판에 성명서가 올랐다. 이 성명서가 오르자마자 작은 청양읍내가 일순 술렁였다.
이 성명이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데는 크게 세 가지 내용 때문이었다. 하나는 풀뿌리 신문으로 불리는 지역신문(청양신문)의 '작위적 오보'로 인해 사기가 떨어져 일을 못하겠다는 '하소연'이요 다른 하나는 결연히 맞서 싸우겠다는 '투쟁 선언'이였다. 또 다른 하나는 그 하소연과 선언의 주체가 '청양군 6급이하 공직자 일동'이라는데 있었다.
때문에 밑도 끝도 없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작위적 기사로 인해'라는 수식어만으로도 주민들은 경악했다.
쌈지돈 보태 십 년이 넘게 지역사랑의 마음 하나로 아끼고 키워온 향토신문이 하위직 공무원을 들들 볶아 일을 못하게 했다니…. 얼마나 못살게 굴었으면 성명까지 냈을까.
군정사상 초유의 하위 공직자 성명은 네티즌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고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는 연일 해당 신문사인 청양신문사에는 항의전화와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정작 해당 청양신문사 관계자들은 어리둥절했다. 그 까닭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올 들어 군청 공무원들로부터 '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작위적 기사'를 썼냐는 항의를 한번 받아 본 적 없었다는 것.
또한 성명이 발표된 후 지금까지도 청양군측은 어떤 기사가 '작위적 기사'인지에 대해 공식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다만 청양신문사측은 성명이 나오기 직전 농민들로부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켜 경찰 수사까지 진행시킨 6월 25일자 "실농보상비 집행 '엉망'…"기사를 염두해 둔 것 아닌가하는 추정속에 "해당기사는 사실과 다름없음"을 거듭 밝혔다.
그러나 성명발표 하루 뒤인 6월 30일. 언론업무를 담당하는 청양군 공보실은 돌연 청양신문사에 대한 '보도자료' 제공을 거부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청양군청 6급이하 공무원들이 성명을 통해 '취재거부'와 '구독거부'를 선언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공보실측은 성명서를 누가, 왜, 무슨 이유로 발표했는지에 대해서는 연신 "잘 모른다"고 밝혔다.
이유없는 취재거부- 도용당한 '6공이하 공직자 일동'
그러나 얼마 후 '6공이하 공직자 일동'이라는 이름마저도 몇몇 계장들에 의해 도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강원모 청양부군수는 이와관련 성명발표 직후인 지난 2일 "6월 하순 경 행정계장 등 몇몇 계장급들이 모여 이같은 성명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성명발표를 주도한 초동주체는 몇몇 계장급 공직자들이었고 이들이 청양신문 '실농보상비 지급 엉망' 기사를 문제삼아 하급 공직자 서명 조직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무작정 '허위보도'라는 단정속에 서명받기에 나섰지만 그나마도 군내 전체 6급이하 공직자의 절반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명은 버젓이 '6급이하 공직자 일동'으로 발표됐다.
이와 관련 지난 6일 자신을 '6급이하공무원'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군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우리 6급이하 이름을 도용해 성명을 발표한 사람들이 몇몇 계장들"이라며 "이들은 5급이상의 상관들을 보호하기 위해 관련이 없는 6급이하 전 공무원을 싸움에 끌어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네티즌은 "6급이하 공무원들이 직장협의회를 만들려고 하자 군민과 시민단체의 지탄의 대상으로 만들어 직협설립에 장애를 만들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청양군측이 실체도 근거도 없이 청양신문에 대한 터무니 없는 공격을 해온 것으로 드러나자 대전충남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충남시민사회단체협의회, 바른지역언론연대 등 대전충남 지역 시민단체 및 언론단체의 규탄 성명과 사과 촉구가 이어졌다.
형식적인 사과 뒤 "잘못 없다"
파문이 확산되자 청양군측은 사태수습에 나섰고 군청 정학진 행정계장이 '6급이하 공직자 일동'을 대신해 청양신문사에 사과의사를 밝혀 왔다. 그러나 정 계장은 사과문을 조율하다 지난 4일 합의되지 않은 사과문을 일방적으로 군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게재했다.
사과문은 '군민 여러분들과 청양신문 구독자들께 우려와 걱정을 드리게 된 점에 대하여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하면서도 정작 청양신문사에 대한 사과와 구체적인 사과 이유를 생략했다.
게다가 정계장은 이후 오마이뉴스와의 인텨뷰 통해 "성명서 발표이후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와전돼 이를 빨리 수습하기 위해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성명서를 낸 것에 대해서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8일, 충남지방경찰청은 청양신문사와 군청과의 '작위적 기사' 논란을 불러온 '실농보상비'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업무상 배임·공문서 위조 및 사기 등의 혐의로 군청 공무원을 무더기(3명 구속, 3명 불구속)로 구속했다. 공직사회의 자기보호를 위한 '여론의 작위적 조작'의 충격적인 사실이 재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할말 없다"…그러나 "공식 사과는 안한다?"
공식 수사결과가 발표되자 '6급이하 공무원 일동'의 성명을 주도했던 청양군청의 한 관계자는 "할 말이 없다. 자성의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에 대한 공식적 입장 표명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청양군 농민회 관계자는 "행정기관이 갖은 부당한 방법으로 뭇매를 가하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얼렁뚱땅 없었던 일로 하고 자 꾀하고 있다"며 "작은 언론을 얕보고 업신여기는 공직사회의 야비한 본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대전충남 민언련 조남주 간사는 "이번 일은 군청 상급 공직자의 묵인하에 작은언론을 얕보고 비판언론을 공격하기 위한 맹목적 반란이었음이 확인됐다"며 "분명한 사과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협회=심규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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