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어느새 또 훌쩍 지나가 버린 한 달을 아쉬워하며 달력 한 장을 넘겼다.

새삼 계절의 여왕 오월이 우리 곁에 살포시 자리 한 것을 확인하고는 주택가 담장 위로 얼굴 내민 보라빛 비누방울같은 라일락 꽃송이와 어디선가 불어오는 미풍 한줄기에 사람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계절이 시작되었음을 느꼈다.

올해는 유난히 꽃샘추위가 늦게까지 찾아와서 ‘추워, 추워’하며 미처 작별하지 못한 겨울옷과 봄옷이 섞여 어수선한 가운데 봄다운 봄을 느껴볼 틈도 없었었는데 어느날 우체국 옆을 지나다가 상아빛 목련꽃송이가 막 벙그는 것을 보고는 예고 없이 찾아온 손님 맞듯 깜짝 놀라 허둥지둥 한 것이 올해 나의 봄맞이였다.

달력을 보며 이 좋은 오월에 자리한 많은 사랑과 감사와 존경의 날을 손꼽아 보고 있으려니 왜 이리 그리운 것도 많고 생각나는 일도 많은지 서둘러 부엌일을 끝내고는 오래된 앨범을 펼쳐 보았다.

흑백의 낡은 사진 속에서 젊은 부모님은 아름다우시며, 어린 나와 형제들의 티 없는 모습에선 이제라도 풀빛 웃음소리가 배어 나올 것만 같아 가만가만 한장씩 넘기는데 유독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생활 통지표이다.

결혼을 하고 이곳으로 올 때 엄마께서 “이젠 네가 가지고 있어야지” 라시며 분홍빛 보자기에 곱게 싸서주신 나의 학창시절 앨범과 대학 졸업장, 그리고 몇 장의 상장 사이에 있던 것이다.

“어머! 엄마, 이걸 여태 가지고 계셨어요?!”라던 내 말에 “이제 막 인생의 출발선 앞에 서있던 네 모습이 담긴거라 가장 기념될 것 같아서 보관하고 있었지”라셔서 마음 한켠이 뭉클했었던 기억에 오늘도 난 그만 눈가가 젖고 만다.

누렇게 바래고 군데군데 얼룩도 조금 진 그 옛날의 생활통지표에서 지금의 내 모습이 거의 비슷하게 읽히고 있다면 조금은 과장일까?

엄마 손잡고 깡충깡충 뛰어가던 유난히 하얗던 학교 가는 길을 비롯하여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초등학교 입학식 날의 풍경을 떠올리며 그때 담임선생님의 성함도 다시 한번 마음속에 담아보고 보호자란에 서명된 아버지의 싸인에선 대사관에 근무하셨던 영향인지 항상 파이오니어적인 그분의 성격을 엿 볼 수 있어서 슬쩍 웃어도 본다.

한 인간이 태어나 성장하고 하나의 인격체로 자리 잡기까지엔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에 다다르면, 나를 있게 해 준 부모님과 내가 만났었던 많은 선생님들께 새삼 감사의 마음을 갖게된다.

따스한 햇살아래 날로 푸르러 가는 오월의 꽃과 나무를 보며 우리 모두 한 때는 사랑의 손길이 필요했던 어린이였었고, 이제는 한 인간을 키워내는 막중한 역할을 지닌 부모로서, 또 영혼을 인도하는 스승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해나가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명심한다면 요즘 각종매체에서 드물지 않게 접하는 적지 않은 불미스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아침, 세상은 사랑으로 충만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은 오월의 노래 한 자락에 젖어듭니다.

<보령도서관주부문학회보령예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