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어린이날의 탄생은 거룩한 것이었다.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 선생은 1921년 어린이란 말을 창안하고, 1923년 어린이날을 제정했다. 이로써 어린이는 조선의 가난하고 불쌍한 존재가 아닌 민족의 미래를 밝히는 꽃으로 들어올려진 것이다.

지난 5일은 어린이날이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날인데 어린이는 점점 귀해진다. 젊은이들의 결혼이 점점 늦어지고, 결혼한다고 해도 아이 가지는 일을 늦추거나 애초에 단념하는 이들 또한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에 반해 노인은 흔하다. 일찍이 물러나 노인 아닌 노인 신세로 노는 젊은 노인들도 문제지만, 장수노인들은 더욱 딱하다. 한국 근·현대사의 간난(艱難)을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오늘의 풍요사회를 맞이했는데 정작 자신들은 천덕꾸러기 신세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런 세태 속에서 요즘 소아과·산부인과는 몰락하고 정형외과는 흥청거린다고 한다. 잘 나가던 산부인과·소아과에 어린이가 귀해지면서, 정형외과는 노인들의 사랑방으로 변신하면서, 두 의원의 역전이 이루어졌다니 세상은 요지경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젊은이들, 특히 똑똑한 젊은 여성들이 건강하게 짝을 짓고 편안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출산과 양육의 사회화가 제도적으로 정착되는 데서 찾을 수 있겠다. 이 문제에 관해 정부도 ‘출산안정법’의 제정 등 대책을 마련 중이라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요즘 젊은 여성들은 전업주부 노릇하기를 싫어한다. 여성들이 자기 능력을 개발해 사회적으로 공헌하는 일은 좋은 일이고, 이는 이미 막을 수 없는 대세다. 그렇다고 전업주부들이 그 때문에 주눅드는 분위기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전업주부는 전업주부대로 직장여성은 또 직장여성대로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서 돕는 것이 중요하다.

직장여성의 경우를 살펴볼 때 지금 상황에선 그들에게 결혼을 종용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아무리 양성평등 가정이라고 해도 결혼은 여성에게 무거운 짐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아이까지 출산하면 그야말로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예전처럼 친정에 가서 편안하게 몸 풀고 안정적으로 조리하는 일은 애초에 바랄 수 없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손주에 대한 무조건적 헌신을 이제는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요즘 산모들이 아이 낳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울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는 최근 우리가 실감하고 있는 터인데, 우리 미래의 꽃인 어린이가 축복이 아니라 공포의 대상으로 돼버렸다는 사실은 우리 시대 최대의 엽기가 아닐 수 없다.

보령시에서는 둘째 아이 출산 시 50만원, 셋째는 80만원의 출산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출산장려금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예고해 놓고 있으나 최근 출산장려금이 선거법에 저촉된다는 유권해석이 있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정부는 물론 시민사회도 함께 이 중차대한 문제에 대한 획기적이고 구체적인 대책 마련에 지혜를 모을 때다. 겉만 번지르르한 하루반짝 행사보다 현상을 점검하고 단계적인 개선책을 내놓는 것이 진정 어린이날을 기리는 어른들의 책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