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학적으로 볼때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한다. 태어날 당시의 우주의 영적인 힘과 깊은 뜻의 결합이 공명에 울림으로 전달되어 부르는 소리는 뇌파의 좋은 진동으로 아이를 잘 자라게 한다고 한다.

그런 내게 어딜 가나 나의 존재를 드러내야 하는 이름 때문에 생기는 부끄러움은 살아가는데 늘 걸림돌이 되었다. 사춘기를 격을 즈음엔 극에 다달아 있었고 오죽 했으면 남편을 만나 상견례를 마치고 결혼 할때까지도 이름을 알면 얼마나 웃을까 싶어 전전긍긍 했을까?

처음으로 인사를 가게된 남편 앞에서 오빠는 연신 “자야! 자야!”부르며 말을 시키니 남편이 속삭이듯이 물었다. “왜 자기를 보고 ‘자야’라고 불러?” “으응? 아! 경상도에서는 동생을 부를때 애칭으로 그렇게들 불러.” 끝까지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이름이 불리우기를 꺼려했던 것이다.

그렇게도 듣기 싫어하는 이 이름을 아버지는 무슨 뜻으로 지은신 걸까? 궁금증이 않생길 수가 없었다. 하여 엄마께 따져 물었더니 정말 생각지도 않게 생겨 난게 내 이름이 아니던가. 그 옛날 사랑방에는 손님으로 온 꼬장꼬장한 노인과 한창 혈기왕성한 청년 그리고 그 집 주인쯤 되는 세사람이 앉아서 문밖넘어 물동이 이고 오는 열다섯의 처녀(?)의 자태를 보고 두 집안은 서로 사돈이 되기로 약조를 했다. 눈빛 한번 맞춰보지 못하고 혼인을 하고 첫날밤을 보내고서야 어슴프레 새벽빛에 남편의 얼굴을 처음 본 것이 우리 부모님의 평생 해로 출발점이었다.

그 이듬해 부터 자식을 낳기 시작해서 줄줄이 아홉을 낳고 마흔 가까이 되어서 열번째로 내가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 사이사이 두꺼비같은 아들 넷을 곳감빼가듯 한 형제 걸러 한명씩 넷을 저세상으로 먼저보냈다. 호적에 먹(墨)도 채 마르기도 전에 떠나 보내야 하는 부모님 심정이 오죽 했을까? 내가 태어났을 때는 호적에 이름을 등재하는 것 조차 두려웠다고 한다. 애써 나의 존재를 관심의 대상 밖으로 밀어내고 지내기를 삼년동안 뚜렷하게 지어진 이름이 없는 탓으로 부르는 대로 이름이 되어서 커가고 있었다.

꽃 피는 춘 삼월 즈음 큰 오빠에게 아이가 태어나고 그제서야 내 존재를 갑자기 깨달은 아버지께서 급하게 읍내로 발걸음을 하셨다.

동사무소에 가서 이름과 생년월일을 올리려고 보니 뚜렷하게 부르던 이름도 없었던터라 그 서기 왈 “그럼 봄 춘(春)자에 아들 자(子)자를 써서 춘자로 지으소” “…” 봄기운 오르는 그 날을 택했기에 무덥고 지리한 한 여름에 비집고 나왔던 나와이제 갖태어난 내 조카는 터울없이 같이 호적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렇게 올린 이름을 온 집안식구들은 아버지가 말해주지 않아 알턱이 없었고 그냥 집에서 부르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본명인줄 알고 초등학교를 들어갔다. 아버지 조차도 까맣게 잊어버려 으레 부르던 이름 ‘정희’로 입학하여일년을 보내고 이학년이 되니 갑자기 ‘춘자’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서류가 미비해도 대충 학교에 입학이 되었던 시절이었는가 보다.

그때부터 나의 이름에 대해 경멸하기 시작했고 아버지를 원망했다. 누군가 가명(假名)이 아닌 본명을 알까봐 전전긍긍하는 일이 많아져서 사회생활을 할때는 대인관계에서 이름 하나로 인해 마음의 빗장을 잠궈 버렸다.

예쁘고 어울리는 듯한 이름으로 불리우길 원하지만항상 가면을 쓰고 사는것 같아 답답하고 내 자신은 어두운 곳에서 웅크리고 있는것 같았다. 그러면서 세월이 흘러 결혼생활에 젖어 ‘누구 엄마’로 통하기 시작하면서오히려 마음은 홀가분해져 갔다. 오래살고 볼 일인지 또 요즘 한창 파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한 연예인의 이름이 나와 같고 설운도의 노래제목 까지 ‘춘자야’가 나왔다.

물론 자세히 들어보면 그다지 좋은 이미지의 주인공 이름은 아닌듯 하지만 그러나 친숙하고 구수한 이미지가 먹히는 요즘 나도 덩달아 그 이름이 주는 효과를 누리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본명을 드러내면서 생기는 그 에너지는 내게 드리워졌던 검은 장막이 걷히듯 새로움에 도전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고 내 진실된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무엇보다 행복하다. 그리고 그 촌스런 이름을 한번 들으면 왠간해서는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해 주어 또 한번 감사한다.

그대! 춘자여 이름 앞에 당당함을 가진다면 더 아름답고 빛나는 사람으로 기억될 것을 나는 믿는다!!

<보령도서관주부문학회보령예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