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절반 정도를 살았다 하면 창조주께 망언이 될까? 평균수명을 생각해 볼 때 서른 일곱의 나이에 절반을 운운하는 것이 크게 잘못되지는 않았으리라.

인생의 절반정도를 살아오면서 크게든 작게든 많은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살아왔다. 그중 내게 좋은 영향을 미쳤던 사람이 있다.

5~6년 전 학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나는 주로 2층에서 강의를 했고 H선생은 3층에서 강의를 했다.

강의를 마치고 수강생카드 정리 및 교재 연구를 하느라 종종 늦게까지 근무할 때면 H선생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고 강의실 문을 노크했다. 눈 내리는 겨울 날 석유난로를 가운데 두고 길지 않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혼이었던 그는 함께 근무하는 여선생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데 그 여선생은 이미 교제중인 상대가 있다는 거였다.

결혼 5년차였던 나는 넉넉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여선생으로부터 그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들었던 터라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 가냐는 그의 말에 박수를 쳐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서로 약간의 오해도 있었지만 내가 나설 입장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여선생은 결혼을 했고, H선생은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소식을 전해 듣진 못해도 흰 눈 내리는 창가에 서 있으면 슬며시 떠오르는 사람 중 하나였다.

몇 년 후 H선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결혼하여 남매를 두었고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죽정동에 위치한 그의 학원에 가보기도 했고, 일일교사로 식물탐사를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그즈음 나는 5년여 동안 지속했던 학원을 접고 다른 사업을 시작했던 터라 다소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문학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는데 동갑나기였지만 문학, 시사 등 다방면에서 그는 나를 앞질렀다.

그는 웅천산업폐기물매립장 설치 반대를 외치며 1인 시위를 할 만큼 신념과 배짱이 있었고, 의식과 필력이 있는 지역신문의 기자이기도 했다.

그의 학원으로 임시 출근한지가 벌써 두 달이 되어간다. 친구처럼 안부를 물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부담감이 찾아왔다. 이른바 노사관계가 된 것이다. 그는 부지런한 성격만큼 늘 종종걸음으로 강의실을 드나들었다.

나도 참 바쁘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나의 몇 곱은 더 바쁘게 살아가는 듯 했다.

아침에 출근을 안 하면 불안하다는 그는 문학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었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작가의 출판기념회를 주도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그는 학원원장이 아니라 사회사업가 같다.

그렇게 바삐 살아가는 그가 빼먹지도 않고 강의시간 챙기듯 시간을 할애하는 일이 있다.

그것이 담배를 피우는 일이라면 아귀가 맞지 않는 말이 될까? 꼼꼼하고 성실한 성격만큼 담배를 피우는 시간도 꼼꼼하게 챙긴다.

그가 담배를 피우는 곳은 학원 문 밖의 계단 앞 창가다. 나의 책상 쪽에서 보면 직선으로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창가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담배를 입에 문 그를 바라보며 회상에 잠겨보았다.

언제나 내게 아낌없는 충고로 좋은 벗이 돼 준 그에게 올 해는 금연하는 일에 도전장을 내보라고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나도 한번쯤은 그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보령도서관주부문학회보령예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