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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안상수 지음 『박종철열사와 6월 민주화 운동』
책 익는 마을 원진호
2024년 06월 04일 (화) 11:48:34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부고
 2024년 04월 17일 故 박 종철열사의 어머니 정차순여사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소천하셨다. 제 5공화국 정권의 부도덕과 부당함을 천하에 드러냈고,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고문치사사건의 희생양이었던 박종철열사의 어머니 정차순여사. 소천하셨다는 뉴스를 듣고 그동안 가슴 속에 고여 있던 감정이 목젖으로 올라왔다. 아~ 어머니 그동안 얼마나 혼나셨습니까? 이젠 하늘에 올라가셔서 보고 싶었던 막내 아들과 남편과 행복하게 사셔요.   잠시 묵념을 드리고 서재의 책장을 훑어 보았다. 내 나름 고인을 추모하고 싶었고 그 것은 나에게 책이었다. 당시 이 사건의 담당 검사였고 나중에 보수정당의 주요 정치인이 되었던 저자가 역사의 기록물로 남기고 후대의 교훈으로 삼고자 쓴 글이다. 우리는 이미 박종철열사의 죽음의 의미와 역사의 교훈이 무엇인지 안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성장한다고 한다. 문익환목사가 87년 故 이한열열사의 장례식에서 전태일, 김상진, 박종철, 이한열등의 민주열사의 이름을 부르짖는 외침이 기억난다. 그러나 나는 또한 역사의 정면에서 일어난 사건 뿐 아니라 그 이면에 있으면서 그 정면의 고통을 감내하고 묵묵히 일상의 삶을 살았던 이도 기억했으면 한다. 시시하고 소소한, 덧없음의 일상이 상처받은 가족의 외로움을 위로했을 것이며, 무심한 우리들에게 막내 아들을 현존하게 만들어 냈을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실존적으로 박종철열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짐을 느낀다. 누군가 그랬다. “ 어무이, 너무 걱정마시고 편히 가시이소. 그곳에서 아버님과 함께  잘 계시이소. 여기서는 제가 단디 해보겠슴니더.” 그래 이제 역사는 남은 사람의 몫이 되었다. 

■ 탁억이오
 당시 신조어다. 이 말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87년 01월 14일 새벽에 경찰청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된 박종철은 선배 박종운의 행방을 밝히라고 추궁받는다. 경찰관들은 곧바로 물고문을 했고 종철은 이내 실신하였다. 사인은 이후 밝혀진대로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였다. 경찰은 곧바로 사건 은폐에 들어갔다. 그러나 현장을 첫 검시한 중앙대 내과 오연상교수가 사망장소는 병원이 아니라 대공분실이었다고 밝혔고, 당시 수사 담당이였던 안상수검사도  정권의 외압에도 불구하고 소신있게 일을 진행했다. 국과수 부검의였던 황적준씨도 심장마비로 사인을 올리라는 경찰청 간부의 압력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처음에 조사관이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했다. 나중에는 “일부 수사관들의 지나친 직무의욕 때문에 빚어졌다”고 했다. 물고문이 밝혀지고 이에 관여했던 수사관은 두 명이었다고 했다. 결국 나중에 밝혀지지만 공범은 세 명 더 있었다. 그 과정에서 치열했던 은폐조작과 진실공방이 책에 고스란히 적혀있다. 
 ‘거짓은 부지런하고 진실은 게으르다’ 말이 있다. 인간의 도구적 이성은 번갯불처럼 빠르고, 성찰적 이성은 굼벵이처럼 느리다. 그러나 번갯불은 금방 사라지지만 굼벵이는 지금도 여전히 앞 길을 간다. 진실과 진리는 그런거다. 개인적 경험도 있다. 나는 87년 6월 10일 아침에 국민대회 전단지를 돌리다가 경찰에 잡혔다. 근데 그 엄중한 이 아침에 형사들은 내 자취방을 영장없이 수색했다. 얼마나 성실한가. 나도 그들도 6.10 대회가 향후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올지 모르고 있었다. 또한 2005년 전용철농민의 사망사건시 보였던 일부 경찰들의 사건 은폐 시도가 도마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인은 명확하고 장소도 확실하다. 애쓰는 그들의 모습이 애처롭게 보일 정도였다. 

■ 어머니, 아버지
 아들이 부검을 마치고 가족에 인계되고 아버지는 아들을 화장했다. 임진강 지류에 유골을 뿌리면서 아버지는 ‘가슴 속에서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철아 잘 가그래이...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 이후 아버지는 민주화 운동에 아들 대신 열심히 나섰다.
 어머니는 경찰의 전화를 받고 부산 집을 나섰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딸이 영안실로 가는 것을 보고 놀랬다. “니 와 이기로 가나? 이기 어디누? 영안실에 와 델꼬 가노?” 어머니는 아들이 죽었음을 알았다. “철아~ 철아~”, “종철아 니 와 여깄나? 학교 안 가고 예서 뭐하나? 어무이 왔대이. 말 좀 하그래이”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을 안고 부르짖었다.

■ 87년 01월 성동구치소
 86년 건대항쟁등으로 많은 학생들이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오전 면회를 다녀온 학생들이 누군가 죽었다는 소문이 돈다고 했다. 수군거렸다, 이렇게 있어서는 안된다고 누군가 말했다. 자연스레 집단단식투쟁에 돌입했다. 다들 힘든 싸움이 되겠다 싶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한나절이 지나자 구치소측에서 대학생이 고문에 의해 사망했다고 말했다. 그 때 옆 동에서 한마디 외침이 났다. “어~ 내 선밴데...” 그리고 한 없는 정적, 절망, 비탄과 고통이 지나갔다. 난 그 때의 감정을 버릴 수 없다. 능력이 안되면 가만히 있겠지만 저 쪽으로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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