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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유대칠 지음 『일반 형이상학 입문』
책익는 마을 원진호
2024년 03월 19일 (화) 11:18:39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의미와 재미다. 의미없는 인생은 우울에 빠지고, 재미없는 인생은 권태에 빠진다. 재미있게 의미를 새기며 사는 인생은 행복하다. 문제는 세상이 호락하지 않다는 거다. 쇼펜하우어가 그랬나. ‘인간은 권태와 고통사이를 오가는 존재이며, 그 사이 순간 스치는 찰나로 행복을 느낀다’고. 그래서 인정해야 한다. 원래 세상은 괴로움으로 가득차 있다고, 
 또 관계는 어떤가? 우리는 위선과 위악사이에서 헤매는 존재다. 적당히 위선적이고, 적당히 위악적인 그런 관계가 우리 사회의 질서를 유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정은 선의로 다가가고 호의로 맞을 때 이루어진다고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존재다. 위선과 위악, 선의와 호의라는 네 가지 변수가 들어있는 방정식을 잘 풀어내는 것이 지혜일 것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 살아내야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여러 해법이 있겠지만 ‘기왕이면’이란 자세로 살면 어떨까.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 변덕스런 우리들 속에 의미와 재미를 찾고, 그리고 선의와 호의로 관계를 맺으며 살면 어떨까. ‘기왕이면’ 말이다.

■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세상은 고통에 차 있고 위선과 위악으로 적당하게 얽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왕이면’이란 자세로 살자 했다. 그러나 도대체 그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말이다. 알아야 면장을 할 건데. 우리만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중세와 고대의 현인들도 그랬고, 이 책의 저자 유대칠님도 그랬다. 젊은 시절 철학에 일생을 맡기자 할 때 정리한 이 책은 간단하지만 깊고, 단순하지만 넓고도 넓은 공간을 마련했다. 바로 철학의 사유라는 공간.
 핵심은 이렇다. ‘무엇으로 있는 것’. 이 것이 일반 형이상학의 화두다. 즉 존재(있는,esse)와 본질(이다,essentia)에 대한 물음이다. 이 것은 중요한 질문이다.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 세상에 한 몫함으로써 사는 존재로서 우리가 그 한 몫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두 가지 태도가 있다. 하나는 실존주의, 다른 하나는 본질주의라 부른다. 존재(있기)와 본질(무엇임)은 실제적으로 구분된다고 보는 것이 전자이고,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이 후자다. 논쟁의 핵심은 신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이다. 중세는 이게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이다. 전자의 대표학자는 토마스 아퀴나스, 후자는 둔스 스코투스와 오캄이다. 왜 이것이 중요할까? 언뜻 보면 존재와 본질은 구분할 수 없다. 시공간의 영역에서 우리는 어찌됐든 어떤 행위와 변화를 겪으며 있기 때문이다. 그 행위와 변화가 ‘한 몫하기’이고 ‘인 것’이기 때문이다. 스코투스는 대상이 무엇이든 ‘사람 지성 가운데 사고 되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이 일의적일 수 밖에’없다 했다. 그러나 신학을 집대성하고자 했던 아퀴나스에게 이 명제를 받아 들이면 신을 어떤 식으로든 정의내려야 했다. 그러나 신은 인간 언어의 밖에 존재하기에, 인간이 어떤 언어로 신을 언급해도 그 것은 유비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존재는 본질에 앞서며, 실제적으로 나눠진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실존주의를 따르면 진선미라는 가치범주와 진리라는 신념체계는 우리의 밖, 신 혹은 신적인 존재에 있다. 본질주의를 따르면 진리는 우리의 맘에 있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개념으로 전자를, 아리스토텔레스는 후자의 입장을 가졌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신지. 에라 모르겠다. 할지 모르겠다. 상황과 처지에 따라 다르니. 다수결과 가위바위보로 결정나는 세상에 자유면 어떻고, 민주면 어떻고, 공화정이면 어떻냐! 이런 생각이 들거다. 결코 틀린 말은 아닐 터.

■ 현상과 본질
 존재와 본질은 본질로 통합된다. ‘있다’와 ‘이다’의 형이상학은 ‘이다’로 통합된다. 그리고 여러 ‘이다’의 현상들(본질이 여럿이면 현상이라는 상대 개념이 된다) 중에 이 것 ‘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본질론의 핵심이다. 저자는 학문의 기초를 이야기 하지만, 형이상학이라고 에둘러 포장하고 있지만 독자에게 이걸 묻고 싶은 거다. 너의 본질론은 무엇이냐? 
 나의 본질론은 없다. 단지 현상만이 있을 뿐이다. 다만 페르소나(가면)만이 있을 뿐이다. 정신분석에서는 다중인격이라고 얘기하나. 그 거다. 책 읽는 책익는 마을 회원이라는가면, 가운 입은 직업인, 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들. 그 것을 관통하며 애써 붙들려 하는 것이 의미와 재미이고, 선의와 호의이고, 기왕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굳이 이 책의 프레임으로 말한다면 이 것이 나의 형이상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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