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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기획 『김용균, 김용균들』
책익는 마을 원진호
2024년 03월 05일 (화) 11:16:25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김용균
 1994. 12월 생. 고향은 경북 구미. 외동아들. 4년제 국립대학에 합격했으나 집안 사정과 취직 걱정으로 2년제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1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 전기 일을 하면서 그  쪽에 적성이 맞음을 알았다. 복학 후 한전 취업을 목표로 공부했다. 입사를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스펙이 필요했다. 그는 한국발전기술에 입사했다. 2018년 9월 17일. 그 곳은 한국서부발전이라는 원청의 하청업체였다. 근무지는 태안화력발전소.
 정부는 화력발전부문을 다섯 개의 공공발전사로 쪼개어 서로 경쟁하게 하였다. 발전사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연속 공정으로 이루어진 업무 영역을 쪼개어 외주. 용역. 하청을 주었다. 발전은 석탄을 배에서 내려 옮기는 준비과정과 발전과정, 그리고 이후 정리과정으로 나뉜다. 발전과정은 정규직이 전과 후는 하청업체가 맡는다. 용균은 석탄을 이리저리 실어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의 운전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다. 기계가 잘 작동하는지를 감시하고 낙탄이 벨트에 닿지 않게 치우는 작업도 한다. 약 1.5km 정도의 동선을 근무 중 세 번 돈다. 한 번 도는데 두 시간 걸린다. 용균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되었다. 그가 맡은 9, 10 호기 쪽은 일하기 어려운 곳으로 알려졌다. 규정상 2인 1조로 움직여야 하는데 인력 부족으로 혼자 움직였다. 12월 10일 밤 용균은 야간 근무를 나섰다. 작업장은 어둡고 기계소음에 분진으로 일하기에 열악했다. 매뉴얼에는 기계에 이상이 있으면 멈추고 작업을 하라 했지만, 기계 이상을 알기 위해서는 작동 상태에서 확인해야 했다. 헤드랜턴이 지급되지 않아 핸드폰 손전등으로 비추며 이상 부위를 찍어야 했다. 응급제동장치인 풀코더는 있다. 그러나 홀로 밀폐함 점검구 안에 들어가 작업하는 이에게는 의미가 없는 장치가 된다. 사수인 과장은 밤 10시 반 이후 용균과 연락이 안 되었다 한다. 용균은 11일 새벽 3시 23분에 트랜스퍼 타워 TT 04C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 김미숙
 11일 아침 태안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인지 확인해 달라. 상태를 말해 줄 수 없단다. 태안의료원 응급실로 갔다. 영안실에서 아이를 보았다. 얼굴이 탄가루로 까맣게 되어 잘 모르겠다. 피부결과 머리카락을 만져보니 우리 아이 느낌이 든다. 그러나 99%에도 1%는 아니기를 하는 바람을 가졌다. 부정하고 싶었다.
 회사 관계자가 다가와 용균이는 착하고 성실했다고 하면서,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고 한다. 정신 없는 와중에 대응을 못 했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나니 그렇다면 용균이가 잘못했다는 거네. 그래서 용균이 동료들에게 물었다. 잘못이 없단다. 진상규명을 해야겠다는 맘이 들었다.
 3일이 지나 용균이 사망한 장소에 갔다. 5층 꼭대기 사고 현장까지 올라가는 계단도 위험했다. 가는 곳 마다 무덤처럼 낙탄이 쏟아져 있고, 혼자서 일하다가 굉음, 분진, 어두운 곳에서 점검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 이렇게 위험한 곳에 자식이 일을 하고 있었다니! 이 것도 모르고 지냈다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부모가 되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너무 자식에게 미안했다. 현장은 물로 씻겨져 있다. 증거인멸. 분하고 억울해서 악을 쓰며 울었다. 짐승의 울음소리였다.  
 민주노총에 유족의 권한을 위임했다. 발전 비정규직 동료 이태성씨가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용균이 사고를 알렸다. 당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어 상경하여 제대로 된 법안이 통과되도록 투쟁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이 법을 김용균법이라 했다. 시민대책위가 꾸려지고 용균이 주검을 2019년 1월 22일 서울대병원으로 옮겼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마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투쟁했다. 촛불문화제도 하고 거리시위도 하고 오체투지도 하고 단식농성도 했다. 아이가 죽은 후 62일 째 설날 아침인 2월 5일에 당정협의로 합의문이 발표되었다. 회사는 사과문을 일간신문에 게재하고, 용균이의 잘못은 없다고 언급했다. 나는 아이의 장례를 치룰 수 있었다. 나중에 죽으면 용균이에게 말할거다. “용균아. 너의 죽음을 보고만 있지 않았단다.”

■ 일하다 아프지 않게 죽지 않게
 태안화력발전소 정문 앞에 설치된 故 김용균 추모 조형물에 쓰여진 문장이다. 이 곳에서 2020년 또 한 번의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망했다. 2022년 01월에 중대재해 처벌법이 국민의 72% 지지를 받으며 제정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산재공화국이다. 1년에 2,080명이 산업 현장에서 죽었다. 하루에 5.7명이다.(2021년 통계. 고용노동부) 우리나라는 자타공인 선진국이다. 기업과 경제가 어렵다고 규제를 풀어달라 하지만 명절 연휴에 20만 명이 해외로 여행을 가는 나라가 되었다. 생명 안전과 관련해서 우리 좀 엄격해지자. 우리 자신이 안전 사고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김용균 투쟁에 참여한 많은 분들이 그 고단함과 정신적 피로에 약을 먹고 지낸다 한다. 응원하고 싶다. 당신들의 그러한 노력에 죽어야 할 사람들이 많이 살아나게 되었다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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