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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조선시기 충청우도 향촌사회사』 저자 김영모 교수 
“보령의 근원 정리…보령의 정체성 제고 위해 필요”
2023년 12월 05일 (화) 12:29:40 김종윤 기자 jjong8610@hanmail.net
   

국내최초 조선시기 충청우도의 향촌사회사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는 『조선시기 충청우도 향촌사회사』가 충남대출판문화원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부령현과 남포현의 사례를 중심으로 조선시기 충청우도의 향촌사회를 다루고 있어 21세기 보령시의 정체성 제고에서 결정적 연구서로 평가된다. 따라서 ‘본지와 보령시민신문’에서 『조선시기 충청우도 향촌사회사』의 저자 김영모 교수와의 공동 특별인터뷰를 통해 이 책의 출간이 갖는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교수님의 전공이 프랑스어라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전공도 아닌 국사학 분야의 향촌사회사를 연구해 이 책을 집필하게 됐나?

▷내 전공은 프랑스어 중에서도 프랑스어발달사이고 그 중 14-15세기 중세프랑스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프랑스 소르본 대학 박사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중세에 관심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내가 프랑스 은사로부터 지도받은 중세프랑스어 필사본 연구 방식을 그대로 한국시대사에 적용해 사료, 방목 등의 자료에 근거해 분석한 전문학술서로 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이 책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이 책은 단순한 조선시기 향촌사회사 연구를 넘어 우리의 선조들이 어떻게 현재의 보령 땅에 살기 시작해 21세기의 보령을 일구어 냈는지를 신라 이후 조선시기 1700년대 말까지 각종 문헌사료를 중심으로 학술적으로 분석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성씨의 경우 족보나 비문의 윤색된 부분을 도려내 가계의 계보나 내용이 다를 수 도 있다. 하지만, 이 책 저술의 목적은 어떤 성씨를 폄훼하거나 추앙하려한 것이 결코 아니다. 조선시기 보령현과 남포현의 22개의 토성(土姓)의 존재와 소멸 그리고 87개의 내성(來姓)의 입향 시기와 사유 그리고 이들 성씨의 재지에서의 활동을 외과 의사가 인체를 해부하듯이 정밀하게 분석해 21세기 보령의 근원(根源)이 무엇인지 밝혀낸 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책의 제목에 나오는 ‘충청우도’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우도와 좌도는 조선시대 한양을 기준으로 바라보았을 때 구분한 행정구역이다. 따라서 충청도의 오른쪽 다시 말해 현재의 충남은 충청우도이고 충북은 충청좌도가 되는 거다. 조선시대의 전라좌도와 전라우도 그리고 경상좌도 경상우도도 동일한 방식으로 나눠진 행정구역이라고 보면 된다.  

▶이 책의 내용은 무엇인가?
▷이 책은 조선시기 보령현과 남포현의 향촌사회를 신라시기부터 1700년대 말까지 두 현을 본관으로 하는 토성(土姓)과 입향 성씨의 형성과 동태를 학술적으로 분석했다. 1부는 보령현 2부는 남포현으로 구성됐는데 지금과 달리 조선시기 보령지역은 보령현과 남포현이라는 별개의 행정구역으로 모든 것이 서로 상이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형식 구분 후 보령현과 남포현을 본관으로 한 22개의 토성(土姓)을 먼저 분석했다. 이어 고려 말에서 조선시기 1700년대 말까지 두 현에 입향한 성씨의 입향 시기, 사유, 재지활동 등을 사료, 방목, 족보, 비명 등을 비교 분석했다. 특히 성씨의 세거지와 묘산과 혼연을 통해 조선시기 보령현과 남포현 향촌사회의 특성을 살펴보았고 읍지, 선생안, 청금록, 서원의 분석을 통하여 당색 및 유학의 특징을 살폈다. 

▶그렇다면 그동안 논란이 있었던 김성우 장군의 문제 또한 이 책에서 밝혀졌다고 보는가?

▷역사 연구는 당대의 정치 사회문화를 총괄해 접근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 책에서 알 수 있듯이, 고려 말 김성우 장군의 보령현 입향 이후 약 50여 개의 유력성씨가 광산김씨의 사위나 (원)외손으로 김성우 장군 전적지로 입향했다. 하나의 현에 이처럼 많은 성씨가 입향한 사례는 전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많은 성씨의 입향이 가능했을까? 이것은 ‘동국여지’, ‘여지도서’ 등에 김성우가 왜구토벌의 공으로 보령현을 사전으로 받아 ‘이 땅의 주인’이라는 기록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많은 성씨의 보령현 입향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연구시기를 1700년 대 말까지 한정한 이유와 독자들의 입장에서 꼭 챙겨야 할 부분은?
▷이 책은 신라시기 이후 1700년대 말까지 현재의 보령 땅에서 살아간 선조들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이는 1800년 이후 신분변동이 크게 일어나 성씨연구에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보령 땅을 본관으로 하는 어떤 성씨가 이 땅에서 살기 시작했고 또 어떤 성씨가 언제 무슨 연유로 이 땅으로 입향해 어떤 활동을 통해 21세기의 보령을 일궜는지를 통시적으로 분석했다. 그래야만 21세기 보령의 본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향촌사회사 연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감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국내의 향촌사회사 연구는 토성의 형성과 동태를 배제한 채 입향성씨를 중심으로 세기별 연구가 주를 이뤄 향촌사회의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토성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었다. 또한 조선시기에 관한 연구는 사족의 형성이나 동향 또는 유학사상 등에 관한 세기별 연구가 주를 이뤄왔다. 조선시기 보령현과 남포현은 행정구역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크게 달랐던 사회였다. 따라서 조선시기 두 현을 논할 때는 반드시 보령현과 남포현으로 구분해 접근해야만 본래의 모습이 보이고 그것이 바로 21세기 보령시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향촌사회사 연구 또한 토성에 기초하여 성씨의 입향을 시대사적 측면에서 통시적으로 접근해야만 향촌사회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충청우도의 홍주목과 공주목에 소속된 많은 군현의 향촌사회사 연구가 활성화돼 그 열기가 전국 군현으로 확장됐으면 한다. 

김영모(金永模) 교수는 청소에서 태어나 충남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국제로터리클럽 해외파견장학생으로 프랑스 소르본대학교에서 중세프랑스어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카이스트 대우교수를 거쳐 현재 충남대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통섭의 학문시대에 중세프랑스어 연구가인 김교수는 프랑스의 중세필사본 박사과정에서 습득한 연구방법론을 적용해 조선시기 한국 향촌사회에 관한 다양한 글을 학회지에 발표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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