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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칼럼] 마음으로 쓰는 편지
2023년 11월 21일 (화) 12:06:15 박종철 논설주간 webmaster@charmnews.co.kr
   
 

막바지 은행잎이 녹아내리는 초겨울 문턱입니다.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엄마 손을 꼭 잡은 어린 아이와 세월을 말해주는 낡은 지팡이, 그리고 줄지어 걸어가는 유치원 꼬마들이 정겹습니다. 고통조차 잊어버린 깊게 패인 주름.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사람과 방황하는 청년도 눈에 띄네요. 아마 오일장이 서는 날이라 사람의 향기가 더 크게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문득, 이 모두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감정은 무엇 때문일까요. 제 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이 볼 폼 없이 흩어져 뒹굴어도 그 자체가 아름다운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이 주는 이 아름다움과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봄의 향기도 가까이 하지 못했고, 눈 내린 겨울 산의 삭풍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용이 구름을 쫓고, 범이 바람을 쫓듯이 우리는 언제나 스치듯 살았고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날도 그렇게 기약 돼 있을 뿐입니다. 오로지 부와 권력을 추구하며 하루를 보냈으며 시기와 질투만 앞세우면서 언제나 ‘갑’의 위치만 추구했지요.

따라서 우리가 늘 탐욕에 사로잡혀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질과 자만에 빠져 나 스스로가 주변과 담을 쌓은 것은 아닌지 한 번 돌아봐야겠습니다. 그런 다음 오늘 하루만이라도 정겨운 사람과 초겨울 정취에 흠뻑 빠져보면 어떨까요. 저 높은 세상을 향해 쉰 목소리도 내보고, 억새 숲에 누워 별 없는 하늘도 느끼면서, 도토리묵 한 접시에 탁주 한 사발을 곁들이면 더 좋을 것입니다.

아니면 푸른빛 추억을 떠올리면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 낮선 환경과 마주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갈등과 논쟁, 가족을 위해 짊어진 등짐 하나까지 모두 내려놓고 차표 한 장에 몸을 맡겨보는 겁니다. 그렇게, 그렇게 훌쩍 떠나서, 초겨울 풍경이나 희망의 노래 곱게 적어 그리운 이에게 띄워봅시다.

나로 인해 주름살이 하나 더 늘었을 아내에게, 저편 기억에서 손짓하는 동심의 벗에게, 그리고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나의 과거에게, 마음의 편지를 전해봅시다. 그러면서 영원히 오지 않을 2023년의 추억을 차곡차곡 갈무리합시다. 먼 훗날 이마에 주름이 하나 더 늘었을 때 틀림없이 아름다운 일기(日記)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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