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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헤르만 헤세 지음 『데미안』
책 익는 마을 유 하나
2023년 10월 24일 (화) 11:32:22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나에게 이르는 길
 나는 내 아이의 사춘기와 내 두 번째 사춘기 사이에서 방황 중이다. 아이를 돌보는 초기에는 무엇을 원하는지 최대한 빨리 알아차리고 바로 반응하며 충족시켜 줘야 했다. 아이가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에 내 모든 인생을 걸기라도 한 듯 늘 아이를 관찰하고 대응했다. 
 그러나 사춘기에 이른 내 아이는 이제 자신을 향한 나의 관심과 반응을 불편해한다. 나는 이 상황이 낯설다. 리모컨을 돌리듯이 내 삶의 패턴이 바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마음은 허전하다. 이럴 때 무슨 책을 읽으면 좋을까 책장을 뒤져보다 꺼내 든 책이 『데미안』이다. 1919년 출판 당시 시대의 아픔도 컸지만, 헤세가 개인적으로도 가장 극적이고 비판적인 시기에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라 다시 읽고 싶었다.
 내가 겪는 혼란과 아픔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삶의 여정이며 성장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일상생활에 젖어 있는 동안에는 의식하기가 어렵다. 아이가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엄마의 품을 떠나려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나 역시 이제는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조율해야 한다. 요즘은 성공하는 삶, 나를 위한 삶에 대해 서로 가르쳐 주겠다고 난리 난 시대 같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 많이 들어 흘러 넘칠 정도다. 그 덕에 마음만 더 조급하게 만드는 것 같아 가끔은 의도적으로 귀를 닫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 『데미안』을 읽을 때는 헤세의 생각을 천천히 곱씹으며 따라가고자 했다. 절망과 위기 속에서 자신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처절하게 고민하고 성찰했던 한 사람의 생각을 내 것으로 만들기를 기대하며.

■ 인간이 겪는 세 단계의 길
 헤르만 헤세는 인간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아가게 되는지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 생각은 『데미안』에 그대로 녹아있다. 첫 번째 단계는 책임이 없는 어린 시절로 시작한다. 그리고 선과 악을 경험하면서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는 데 비도덕과 외로움에 빠져 누구나 어김없이 절망으로 치닫는 두 번째 단계를 겪는다. 이 시점에서 느낀 절망은 결국 파국으로 가거나 구원의 길로 나뉜다. 세 번째 단계는 진정한 자신의 길을 찾아 자아실현의 방향으로 갈 건지 아니면 포기하고 나락의 길을 갈 건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싱클레어는 자신이 밝은 세계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고 어두운 세계와는 무관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크로머에 의해 어두운 세계를 체험하고, 밝은 세계는 절망에 빠진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없음을 인식한다. 데미안은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눠놓고 아름답고 고상한 것만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함을 이야기한다. 싱클레어는 이제 선과 악이 공존함을 몸소 느끼게 된다. 악의 세계에 빠져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밝은 세계에 대한 경외심을 놓지 않았기에 불안에 떨었다. 싱클레어는 선과 악 두 세계의 갈등 속에서 자기 도피적인 방황의 생활을 이어가며 두 번째 단계의 끝인 절망에 빠진다. 이제 싱클레어는 마지막 단계인 스스로의 선택만이 남았다. 그런데 문제는 밝은 세계로의 선택을 선으로 규정지으면 자아실현의 선택마저도 선과 악의 경계를 만들 수 있다. 헤세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까.

■ 선과 악의 신, 아브락사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지금껏 이 유명한 문장은 그저 내 안의 한계를 부수고 이겨내야 한다는 의미로 알고 있었다. 이것은 아브락사스 정신에 어긋난다. 아브락사스는 『데미안』을 관통하는 하나의 핵심이다. 선과 악, 밝은 세상과 어두운 세상이 공존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내가 깨뜨리고 싶은 알을 부수고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밝은 세상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아니면 그토록 깨고 싶었던 알이 사실은 잘못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알을 깨고 나와 봐야 알 수 있다. 알을 깨고 나온 새가 아브락사스로 날아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선택은 전적으로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없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어.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싱클레어가 데미안의 가르침으로 선과 악의 두 세계를 인정하는 것이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깨닫지만 내면에서 나오는 대로 사는 것에 커다란 어려움을 느끼고 자살을 결심한다. 결국에는 싱클레어가 아브락사스를 이해하고 진정한 자아를 점점 확실하게 인식하는 단계로 가지만 역시 삶은 쉽게 내어주는 게 하나도 없다. 나는 과거의 절망과 악의 세계를 인정하지 못한 사람에게 현재는 없음을 싱클레어를 통해 보았다. 삶의 과정을 이해하고 현재를 살면서도 내가 나가야 할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는 일 그리고 아브락사스가 내 안에 있음을 느끼며 데미안의 정신을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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