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과 친해지기
“우연인가 운명인가?” 나는 가끔 극적인 상황에 부딪힐 때 이런 생각을 한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우리가 겪는 많은 사건들은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 그저 결과에 대한 역산 사고를 통해 추측할 뿐이다. 그래도 안될 때에는 운을 갖다 붙인다. 나처럼 삶에 대한 해석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그 운의 여부마저 밝히고 싶어 사주팔자를 통해 운명까지 접근하고자 한다. 나는 얼마 전 내 사주팔자가 무척이나 힘겹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주풀이에 내 삶을 끼워 맞춰보니 신기하게 들어맞았다. 내가 겪은 모든 힘든 일들의 원인이 자명하게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양가감정을 느꼈다. 내가 그동안 풀어내지 못한 삶의 비밀을 알게 된 것처럼 속이 시원하면서 동시에 우연이라 하기엔 납득이 안되고 운명이라 하기엔 억울했다.
 이런 감정으로 펴든 책이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이다. 이 책의 원제 『Alles Zufall』은 독일어로 ‘모든 것은 우연이다’라는 뜻이다. 저자 스테판 클라인(Stefan Klein)은 우연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그는 우연의 의미와 우연히 일어나는 원리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가 우연과 친해지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우리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나뉘며 이 두 가지를 잘 구분하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는 과학적인 연구와 철학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쉽게 이해를 돕는다. 우연을 납득하기에 아주 유용하다. 그러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우연과 억울한 운명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다.

■ 우연한 사건으로서의 운명
 이 책은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설득한다. 그렇다면 우연 속에 운명이 포함되는 것일까. 우연은 종종 운명적인 의미를 지니는 사건으로 해석될 수 있다. 어떤 사건이 우연히 발생하여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주거나 앞길을 바꾼다면 운명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이런 맥락에서 적극적으로 우연의 기회를 탐색하고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은 설득력이 있다. 사실 우연한 사건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기회에 대한 인식을 위해 열린 마음과 호기심, 새로운 경험에 대한 욕구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운명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의 행동과 선택을 통해 우연의 기회를 찾아내고 활용할 수 있는 책임과 자유를 상기시킨다. 또한 우리가 적극적으로 우연의 기회를 탐색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창의적인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주장한다. 우연이 운명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역할을 한다면 우연과 운명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건 중요하다. 그리스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는 “성격이 운명이다”라는 견해를 주장했다. 개인의 성격과 인격이 운명을 형성하고 결정한다는 의미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어려움이나 운명의 도전을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반면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은 운명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우연의 역할이나 행운에 대해 의심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 책의 메시지와 같은 맥락이다.

■ 계획적인 삶과의 이별
 우연과 운명은 상호작용한다. 우연을 어떻게 활용하여 내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는 성격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성격은 우연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고, 운명은 우연을 대하는 삶의 태도에 의해 모양을 갖추고 진화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고 책을 다시 읽었다. 성격과 운명 그리고 우연에 관계를 정리한 후에야 우연을 인정하는 것이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는 저자의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우연의 영향을 인정함으로써 우리의 성취나 성공이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에 기인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맥락에서 겸손은 삶의 본질적인 예측 불가능성과 통제의 한계를 인식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어찌할 수 있는 세계와 그렇지 못한 세계를 구분할 힘이 생긴다.
 우연은 우리의 이해나 영향력을 넘어서는 요인이기에 열린 마음과 호기심을 요구하는 것일 테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우연히 발생하는 가능성과 기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세계의 복잡성과 상호 연결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므로 저자의 주장대로 우연을 믿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며 오히려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우연이 전부인 우주의 작은 존재로서 우리의 위치를 인정하는 겸손함이 필요한 만큼 자신의 삶과 주변 세상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동적인 개인임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어쨌든 우리는 치열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