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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이민진 소설 『파친코1,2』
책익는 마을 유하나
2022년 11월 01일 (화) 11:04:27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이민진 작가는 누구인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역사학을 공부했고 변호사로 일했으나 건강 문제로 그만두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작가는 역사학과 재학시절 우연히 강의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어린 소년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 소년은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이었고 일본인 급우들에게 지독한 괴롭힘을 당했다. 그때 작가는 재일조선인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했고 30여 년 동안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집필했다. 작가는 일본계 미국인인 남편과 4년간 일본에 머물며 100명이 넘는 재일조선인을 만나 방대하고 치밀한 취재를 하면서 초고와 책의 구성까지 모두 폐기했다고 한다. 초고의 주인공은 학문적 연구를 토대로 쓴 미국의 남성 재일교포 3세였다. 현실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작가가 실제로 그 역사를 겪어낸 사람들을 만나면서 온갖 굴욕과 손가락질에도 억척스럽게 살아낸 인물이야말로 재일조선인을 제대로 나타낼 수 있다고 느꼈다. 결국 고난과 역경을 딛고 살아낸 조선인 여성 ‘선자’라는 새 주인공이 탄생한다. 미국에서 성공지향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남성이 아닌 진짜 재일조선인을 대표하는 선자의 이야기는 역사가 함부로 제껴 놓았던 평범한 이들의 삶을 대변한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소설의 첫 문장이다. 최고의 고전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강렬하다. 역사의 파도에 휩쓸려 고군분투해야 했던 모든 조선인들에 대한 헌사이며 존엄성에 대한 표현으로 느껴진다. 결코 굴하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강인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 파친코는 어떤 이야기인가
 소설은 총 3부다. 1부 고향, 2부 모국, 3부 파친코. 소설의 중심 인물은 선자다. 선자는 부산 영도에서 하숙집을 하는 부모님과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을 산다. 선자에게 특별한 사랑을 주었던 아버지 훈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어머니와 둘이 하숙집을 꾸려나간다. 늘 그렇듯이 장을 보러 나간 선자는 시장에서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생선 중개상 고한수를 만난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선자는 임신을 한다. 고한수와 혼인할 것으로 생각한 선자는 고한수가 일본에 처와 두 딸이 있는 유부남이라는 말을 듣는다. 고한수는 선자와 혼인은 못하지만 선자와 아이를 책임지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선자는 고한수를 떠난다. 그때 선자네 하숙집에 잠시 머물게 된 젊은 목사 백이삭이 선자의 앞에 나타난다. 이때부터 혼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역동의 삶을 살아내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서울에서는 나 같은 사람을 일본 놈이라고 불러. 일본에서는 내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든 얼마나 좋은 사람이든 더러운 조선인일 뿐이야.” 선자의 자식들과 손자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디아스포라의 상태로 살면서 각기 다른 가치관을 갖게 된다. 조선에서 건너온 1세대 선자와 2세대, 3세대로 이어지는 인물들의 선택과 유기적인 관계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저자 역시 자신이 이민 1세대라는 정체성이 집필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고향과 민족 그리고 국가와 정체성이 갖는 의미와 그 혼란함을 만들어내는 지점을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건 문학이라는 장르였기에 가능했다. <파친코>는 1910년대부터 80년에 가까운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군더더기 없이 이야기를 과감히 쳐내면서 전개의 속도를 높이고 의미의 깊이를 헤아려야 하는 간결한 문장으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 왜 파친코인가
 소설에서 ‘파친코’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 공간은 당시 재일조선인으로 원하는 직업과 삶을 가질 수 없었던 이들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모자수는 인생이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믿었다. 다이얼을 돌려서 조정할 수 있지만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로 생긴 불확실성 또한 기대한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모자수가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을 파친코에 빗대어 나타낸 문장이다. 이 표현을 통해 작가가 왜 파친코를 내세웠는지 알 수 있다. 인물들이 갖는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는 쉽게 꺾이지 않지만 그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모호한 방향성 자체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제발전을 이룬 화려한 도시 오사카에서의 비참한 삶을 살았던 재일조선인들의 삶은 화려한 조명 아래 자신이 행운아일 거라는 희망을 품은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 파친코의 축소판이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로 시작하는 소설은 “이 아줌마의 삶에도 평범한 일상 너머에 반짝이는 아름다움과 영광의 순간들이 있었다. 아무도 몰라준다고 해도 그것은 사실 이었다.”로 마무리 된다. 이 두 문장이 소설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다. 폭풍과도 같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파친코>는 이미 새로운 고전의 탄생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제인 오스틴과 조지 엘리엇을 잇는 작가라는 찬사 자체가 너무나 감격스럽다. 순수하고 어린 선자가 맞서야 했던 세상은 순박했던 사람들의 삶을 제껴 두었지만 그 안에서 강인하게 살아 숨쉬며 삶을 이어간 우리 조선인들의 한과 회복력이 가슴에 오래 남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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