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 안의 깃든 나의 정체성
 “산다는 건 참 어렵다. 우리 모두는 각자 합당한 삶의 짐을 짊어지고 있기에 자신만의 고충이 있다.” 저자 곽 민준은 피할 수 없는 아픔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그는 포스텍 신경유전학 연구실에서 신경 발달 질환의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다. 신경유전학은 뇌의 생성과정에 유전자가 어떻게 개입하는지에 대한 연구이다. 이 책의 부제는 <유전자에서 행동까지 이어지는 뇌의 비밀>이다.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유전자의 기본적인 원리부터 유전자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질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살핀다. 뇌와 유전자에 관한 연구 결과물이 인기를 끌고 사회 각종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에 저자의 남다른 우려와 기대가 돋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보통 사회적으로 부여된 나의 위치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것이 곧 ‘나’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저자는 ‘나’의 정체성을 뇌의 신경세포 네트워크에서도 찾는다. 신경세포의 연결이 생성되고 해제되는 행위가 그 사람의 경험을 기록하고 기억을 구성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경유전학 연구의 의의가 담겨있다. 신경 유전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신체적 증상의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의 문제를 동시에 겪는다. 신경유전학자로서 저자의 목표는 생물학적 현상이 어떻게 사람의 행동과 신경 질환 증상에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인간을 바라보는 편견들에 대한 올바른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 유전학의 역사와 신경유전학
 신경유전학은 1970년 즈음 등장하는데 그 뿌리는 다윈으로부터 시작한다. 다윈은 자연에 가장 적합하게 적응한 개체만이 살아남아 진화한다는 ‘자연선택’ 이론을 주장했다. 여기서 부모의 유전물질이 섞여 자식의 정보를 결정한다는 ‘범생설’ 가설을 세운다. 그러나 이 가설에서 진화의 핵심인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다. 범생설의 반박으로 사람도 인위 선택을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진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우생학’이 창시된다. 우생학은 인류에게 커다란 비극을 낳았다.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우생학 연구로 통계학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유전학의 등장에 큰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우생학이 ‘변화’의 메커니즘을 설명한 것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한 힌트는 뜬금없이 오스트리아의 수도사 멘델의 완두콩 연구에서 발견되었다.
 그 이후 멘델 학파와 우생학자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우생학자 로널드 피셔와 통계학자들이 ‘집단유전학’이라는 분야를 열었다. 집단유전학은 멘델 유전으로 다윈의 진화론을 깔끔히 설명해 냈다. 현대 유전학이 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드디어 마련되었다. 저자는 유전학의 역사를 자세히 풀어내면서 현대 유전학의 위치와 역할의 중요성을 이끌어 낸다. 특히 뉴런에 집중한다. 뉴런은 한번 만들어지면 평생 유지되고 조금씩 변화하면서 우리의 삶을 기록한다. 그런데 이 뉴런을 만드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뇌전증과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나타난다. 저자의 이러한 설명을 통해 뇌 네트워크가 생명 현상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저자는 질환이라는 특수한 현상을 넘어 기억의 흔적이라고 정의되는 앤그램, 생체시계의 원리, 언어의 유전학도 살펴본다. 이 연구들은 뉴런과 함께 인간의 정체성을 찾는 힌트가 된다고 한다.

■ 신경유전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
 저자는 여러 연구 결과와 사실들을 소개하면서 과학적 지식과 의학적 활용에 주목하지만 과학의 진짜 가치는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 있다고 말한다. 과학적 과정에서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는 개인의 성격과 외모가 모두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유전자 결정론이 만연하게 자리 잡았던 시대였다. 지금의 생명과학은 유전자가 만능이 아니라고 말하며 유전자 시대에서 벗어나기를 경고한다. 저자가 경계하는 점도 바로 시대에 맞지 않는 이론과 사상이다. 대표적으로 <이기적인 유전자>의 저자로 유명한 도킨슨을 예로 든다. 도킨슨은 최근에도 우생학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현시대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아직 우리 사회가 이런 잘못된 생물학적 지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각종 차별과 혐오의 합리화를 범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겠다.
 나 역시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말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사람의 얼굴은 진화 중에서도 다양성 진화의 대표적 예시다. 아름다운 얼굴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건 아무 이유 없는 우연에 의한 진화다. 어떤 얼굴이 어떤 성격, 어떤 특성을 대표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관상은 과학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생명은 복잡하고 행동은 더욱 복잡하다. 복잡계의 집합체인 우리가 모여 구성하는 사회는 얼마나 복잡할 것인가. 그러므로 세상을 쉽게 보고 타인을 쉽게 생각하는 태도는 너무나 오만하다. 유전자에서 행동까지 이어지는 생명의 복잡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나와 타인 그리고 사회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언젠가는 과학의 지혜가 쌓여 삶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이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이 책을 추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