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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한나 크리츨로우 지음 『운명의 과학』
책 익는 마을 유 하나
2021년 08월 17일 (화) 11:25:15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자유의지와 운명에 관하여
 나는 그동안 ‘노력 중독자’로 살아왔다. 그래서 최근 몇 년 동안 내 삶의 주요 관심사는 온통 자기계발이었다. ‘남들과 어떻게 하면 차별화된 능력을 가질 수 있을까,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라는 생각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기계발의 늪에 빠지고 능력주의의 덫에 걸려 발버둥 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내 자유의지가 어디까지 통제될 수 있는지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공정하다는 착각>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를 비판하면서 ‘재능과 운이 가지는 우연성’에 대해 언급했다. 타고난 운명도 재능이 될 수 있기에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무척이나 흥미로움을 느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능력과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책을 소개한다. 이 책의 저자 ‘한나 크리츨로우’는 신경과학자로서 생물학을 통해 선천적 특성과 각각의 개인에게 주어진 유전적 특성의 교차 지점에서 운명을 이해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 무엇을 배울 것인가
 뇌 과학이 발전할수록 자유의지의 영역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넓지 않다는 것을 인식할 때 찾아오는 불편하고 불안정한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저자의 문제의식 역시 여기서 출발한다. 나는 우리가 그동안 공정하다고 생각해온 ‘능력주의’가 사실은 불공평을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정치철학자에게서 개인이 사회에 발휘하는 능력의 의미에 대해서 배웠다. 또한 같은 맥락을 좀 더 미시적인 개인의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각자가 만들어 내는 신념과 자유의지가 우리의 생각만큼 통제되고 있지 않음을 신경과학자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사실 모르고 살아도 그만인 것들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복잡한 정치적 얘기나 뇌 과학의 지식을 배우려는 목적만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각 분야의 많은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것들이 있다. 겸손과 이타주의다. 결국에는 연대를 통한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기본을 얘기하는 것이다. 이 책은 뇌 과학자가 철학적 자아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우리의 삶과 관련된 많은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저자는 타고난 생물학적 영향력이 운명으로서 작용하는 것에 비중을 두지만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인간 본성에 관한 분류는 경계한다.

■ 우리의 뇌는 바쁘다
 우리는 종종 한 사건을 두고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여기에서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내가 보는 방식과 다른 사람이 보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보면 당연히 같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오류와 왜곡이 발생한다. 저자는 이 오류와 왜곡이 발생하는 이유가 우리의 뇌가 너무 바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각이 방대한 과제를 처리하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뇌가 일을 더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정보의 처리 과정을 단축시킬 때 오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때 정보를 압축시키는 과정에서 패턴이 만들어지는데 그 패턴의 부산물로 생겨난 것이 신념이다. 그렇다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각각 자신만의 패턴이 만들어질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신념이나 세계관도 조금씩 다를 텐데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화합과 연대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 연민과 협동의 신경과학
 저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인간의 행동에 관한 새로운 통찰을 개인의 노력으로 미루지 않고 사회적 차원에서 고찰한다. 특히 신경과학을 현실에 적용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예시를 통해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사람들의 ‘인지적 저항’을 줄이는 방식을 지향하는 ‘넛지 이론’을 소개한다. 국내에서도 ‘넛지’라는 제목의 단행본이 큰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난다. 이것은 쉽게 말해 사람들의 행동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 환경을 바꿔주거나 그 환경에 노출될 수 있게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환경 변화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방식을 택한다. 사람들은 보통 변화에 큰 저항을 느끼기 때문에 그 특성을 이용하는 전략이다. 그리고 스탠퍼드 대학교 의대에 연민과 이타주의 연구 및 교육 센터의 설립을 소개한다. 수백 년 동안 제기되어 왔던 이타주의와 연민에 관한 질문에 신경과학이 해답을 내기 위한 시도가 시작된 것이다. 유전적 요인에 의한 운명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저자는 개인과 사회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열심히 설득한다. 제목만 보면 과학서이지만?인문학적인 요소가 상당 부분 차지한다는 점과 공감 가는 질문들을 통해 나와 내 주변을 다시 환기시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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