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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2주년 3.1절 특별기고]
청소면의 항일독립운동가 복암(復菴) 김화식(金華埴)
(김영모 · 충남대교수)
2021년 02월 23일 (화) 10:58:05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김화식이 스승 유인석에게 보낸 편지.
   
▲ 김영모 교수.

그동안 항일독립운동사 연구나 향토사 연구를 통하여 보령지방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발굴되어 소개되어 왔다. 하지만 보령의 북부지역인 청소면의 항일독립운동은 그동안 보령지방의 항일독립운동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최근에 김화식이 청소면의 인물로 밝혀지면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청소면의 항일독립운동가 김화식은 누구인가? 
김화식은 부친 김한표(金漢杓, 1835-1871)와 모친 전주이씨의 장남으로 1866년 7월3일 보령현 청라동 옥계리에서 태어났다. 부친 김한표는 무과(1858)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지냈고 외조는 변지첨사를 지낸 구재봉(具載鳳, 1784-?)이다. 조부 김진국(金鎭國, 1819-1878)도 무과(1837)에 급제하여 부령도호부사를 지냈다.
김화식은 수안군사(遂安郡事)를 지낸 김칠양(金七陽)을 파조로 하는 안동김씨(구안동)이다. 김칠양은 경순왕의 후손으로 고려시기 무신으로 중찬을 지낸 김방경(金方慶, 1212-1300)의 5세손이다. 파조 김칠양은 이색, 정몽주의 문인으로 조선이 개국하자 경기도 파주로 낙향하여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경기도 파주 세거 김화식 가계의 보령현 청라동 입향과 청소면으로의 이거는 혼연을 통한 처변(妻邊)으로 이루어져>

경기도 파주가 세거지인 김화식 선계의 보령현 입향은 김화식의 증조 김재인(金在仁, 1789-1844)의 종조 김낙원(金樂元, 1761-?)이 청라동의 재지사족인 한양조씨 호군(護軍) 조극량(克亮)의 딸과 혼인하여 처변(妻邊)으로 이루어졌다. 김낙원에 이어 김재인이 한양조씨와의 혼연으로 입향한 후 아들 김진국이 능성구씨와 혼연을 통하여 청라동에 입향하였다. 김화식의 증조 김재인이 한양조씨와 결혼하여 보령현에 입향한 것은 그의 종조 김낙원의 배위인 한양조씨의 중매로 이루어졌고, 조부 김진국의 능성구씨와의 혼연 또한 친척의 연으로 이루어졌다. 이처럼 김화식 선계가 경기도 파주에서 보령현 청라동으로 입향할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이 광산김씨, 한양조씨, 능성구씨의 세거지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청라동 옥계리는 한양조씨 조이로(趙以&#29840;)가 광산김씨 김남호의 사위가 되어 처변으로 조선전기에 입향한 이후 단양우씨, 능성구씨가 외변(外邊)으로 입향한 곳이다. 이렇게 처변으로 청라동 옥계리에 정착한 김화식 선계는 부친 김한표 대에 수안이씨 요산군(遼山君) 이기(李夔) 후손들의 세거지인 청소면 신송리로 이거하였다. 그러면 김화식의 부친 김한표의 청소면 이거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부친 김한표의 청소면 이거는 동생 김한기와 조카 김창식이 수안이씨 이덕현과 이의현의 사위가 되어 처변으로 이루어졌다.

<김화식이 유인석의 참모로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은 족숙 김한순이 화서학파 유중교, 유인석의 문인이었기에 가능>

김화식은 6세에 부친을 여의고 조부 김진국 밑에서 가학으로 공부하다가 조부가 사망하자 족숙 김한순(金漢純, 1850-1915)을 찾아 공부하면서 화서학파의 유중교(柳重敎, 1832-1893)와 유인석(柳麟錫, 1842-1915) 문하에서 수학했다. 이런 학연으로 김화식은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유인석이 주도하는 제천 의병진에 참여하여 그의 참모로 항일운동에 참여했다. 이처럼 그가 화서학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족숙 김한순이 유중교의 문인이었고 김한순의 부친 김우현(金禹鉉, 1829-1886)이 화서 이항로(李恒老, 1792-1868)의 문인이었기에 가능하였다. 김화식의 항일운동은 스승 유인석과 궤를 같이하였고 ‘척화양이(斥和洋夷)’라는 화서학파의 사상이 크게 작용하였다. 그는 유인석과 함께 3차례나 중국을 다녀왔고 유인석 의병진의 진중의 일기를 정리한 『소의신편(昭義新編)』 8권을 발문과 함께 만주에서 발간하였다.

김화식의 의병활동에서 주목되는 것은 보령지역 유림에 끼친 그의 영향력이다. 김화식은 화서학파는 물론 남포현과 보령현의 재지사족들과 교유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남포현에서는 경기도 양주 출신의 윤석봉이 김화식을 매개로 유인석의 항일운동을 함께 공유하며 유림들이 항일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였다. 이들의 교유는 유중교의 문하에서 공부한 화서학맥에서 비롯되었다. 윤석봉이 창건한 집성당 향사에 김화식이 참여하고, 김화식의 『소의신편』 서문 요청에 윤석봉이 글을 짓는 것은 모두가 두 사람의 학연에서 이루어졌다. 조선 말기에 남포현의 백관형, 김광제 등이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것도 김화식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 단몽협흡(김화식문집 표지).
<남포현의 화서학맥, 보령현의 남당학맥 유림들의 항일독립운동의 연결고리 역할, 김우동(金友東)은 김화식의 이명(異名)>

보령현은 남포현과 달리 남당학맥이 주류였고 유호근, 심의덕, 조구원 등이 대표적 유학자였다. 화서학맥의 김화식이 이들과 교유할 수 있었던 것은 보령현 재지사족이 통혼권으로 형성된 하나의 공동체였고 항일독립이란 시대적 상황이 학맥의 차이를 극복한 것이었다.

김화식은 불우한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족숙 김한순의 도움으로 유중교와 유인석을 찾아 배우면서 ‘척화양이’라는 화서학파의 유교적 삶을 몸소 실천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그의 유교관은 조선말기 일본의 침략에 맞서 분연히 일어난 유인석의 의병진에 참여하게 하였고 그의 의병활동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아쉽게도 김화식은 해방을 눈앞에 두고 청소면 신송리 본가에서 77세(1943)의 일기로 타계하였다, 그의 유해는 청소면 신송리에 묻혔다가 경기도 파주 선영으로 이장하여 오늘에 이른다.

정부는 김화식의 이러한 항일독립운동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제2190호)을 추서하였다. 하지만 애국장 추서 당시 후손의 입증이 안 되어 후손에게 훈장이 수여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였다.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까? 이것은 그의 실명(김화식)과 등본의 기록(김우동)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기록이 달랐던 것은 김화식의 항일독립운동에 그 원인이 있었다. 1914년 일본에 의해 호적법이 시행되면서 김화식은 일본의 감시를 피해 선전관(宣傳官)을 지낸 부친 김진국은 그의 관직명인 ‘김선전(金宣傳)’으로, 본인 김화식은 ‘김우동(金友東)’으로 세 아들 또한 가명이나 족보의 ‘자(字)로 등록했던 것이다. 김화식과 김우동은 동일인물이고 김우동은 김화식의 이명(異名)이었다.

안동김문의 명문가 후손으로 태어난 김화식은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유인석의 핵심참모로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한 보령시 청소면의 위대한 독립운동가이다. 뒤늦게나마 지난 해 8월 후손들에게 훈장증과 애국장이 돌아간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이를 계기로 김화식의 국립묘지 안장, 그의 옛 집터에 기념비 건립, 문집발간 등을 통하여 그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현양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해야 할 도리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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